뉴스빅데이터시스템 빅카인즈에서 '국회의원 갑질' 분석
피감기관에 제품팔기?부시장에 민원 전화...구설 올라
갑질 논란에 나온 단골 멘트 "내가 국회의원"
갑질(gapjil).
'한국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의 상대방에 대한 오만하고 권위적인 태도나 행위(an expression referring to an arrogant and authoritarian attitude or actions of people in South Korea who have positions of power over others)'를 뜻하는 말로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말입니다. '재벌(chaebol)', '먹방(mukbang)'과 함께 이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죠.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과정에서도 갑질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사 당일 탄 명지병원 재난의료지원팀(DMAT) 긴급출동차량, 일명 '닥터카'에 탑승하면서 비슷한 거리에 있는 다른 병원의 닥터카보다 20~30분 늦게 도착했다는 지적이 나온 거죠. 가정의학과 교수 출신인 신 의원이 굳이 닥터카를 탑승한 데에 국회의원이라는 '우월적 지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여기다 치과의사인 신 의원 남편까지 예고 없이 동승해 빈축을 샀습니다. 신 의원이 사과하고 국정조사 위원을 사퇴했지만,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논란과 비슷한 국회의원 갑질 사례를 정리해봤습니다. 국회의원 가족‧친인척의 취업‧입학 청탁, 보좌진을 상대로 한 의원들의 갑질은 여야 모두 빈도와 정도(程度)가 비슷해 생략했습니다.
'국회의원 갑질' 첫 보도 사례는 2014년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국회의원 갑질'이 키워드로 포함된 기사를 검색하니 1990년부터 올해 12월 28일까지 5,300여 건에 달하더군요. 이 기사들을 전수 분석한 결과, 실제 국회의원이나 그 보좌진이 피감기관, 민간에 갑질을 해 문제가 된 기사는 대략 20~30% 정도였습니다. 나머지는 국회의원이 갑질을 방지하기 위해 법안을 발의했거나, 갑질 기관을 질책하거나, 갑질 방지를 선거 공약으로 내건 것이었습니다.
'국회의원 갑질'이 문제로 지적된 건 2013년부터입니다. 온라인에 갑질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과 시기가 맞물립니다. 다만 당시에는 국정감사 기간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에 각종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을 에둘러 '갑질'이라 질타할 뿐 특정인의 '사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구체적 사례는 이듬해 9월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대리기사 폭행 논란 때 나왔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진상조사특위 수사권, 기소권 반대 입장을 내놓자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식사 자리를 마련했고, 김 의원이 이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대리기사를 30분 넘게 기다리게 해 시비가 붙었습니다. (관련기사) 이후 유가족들의 대리기사 폭행까지 이어졌는데 김 의원은 폭행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누군지 알아" 등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갑질 패악"(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이란 질타를 받았습니다.
2015년 7월에는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의 비서관 갑질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정 의원 초선 때인 15대 국회의원부터 인연을 맺은 최측근 비서관 유모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재배한 감자 20㎏들이 100상자를 한국거래소 산하 국민행복재단에 팔았습니다. 문제는 한국거래소가 정 의원의 피감기관이었다는 사실이죠. 당시 정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논란이 되자 해당 비서관은 사표를 냈고 비서관 아버지는 한국거래소에 판매한 감자 대금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했습니다. (관련기사)
같은 해 12월에는 노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시집 판매도 갑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노 의원은 그해 10월 '하늘 아래 딱 한 송이'란 시집을 내고 지역구인 충북 청주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법에는 국회의원이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정가로 팔 수 있었죠. 문제는 출판기념회 현장에서 사용하고 반납하지 않은 카드 단말기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놓고 석탄공사 등 노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피감기관에 판매했다는 겁니다. 문제가 불거진 후 노 의원 측은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판매한 것은 물론 출판기념회 현장에서 피감기관에 판매한 것까지 모두 취소했지만, 비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관련기사)
당시 문재인 당대표까지 공개적으로 감사를 지시하면서 노 의원은 대국민사과와 산자위 위원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럼에도 논란이 계속되자 민주당은 4‧13 총선을 석 달가량 앞두고 노 의원에게 '당원 자격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사실상 불출마를 강권한 셈이죠.
개인적인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부시장에게 갑질을 해 입길에 오른 중견 정치인도 있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죠. 이미 총리를 역임하고 7선 의원으로 활동한 2016년에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이 전 총리는 자신의 세종시 전원주택 주변 밭에 농민 A씨가 뿌린 퇴비 냄새가 심하다며 세종시 축산과, 조치원 읍사무소 등에 두 차례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성과가 없자 세종시 행정부시장에게 직접 전화해 “퇴비 냄새가 심하다”고 전화해 민원을 넣었고, 해당 농민은 사흘 뒤 밭에 뿌린 퇴비 15톤을 전량 수거해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비판이 이어지자 이 전 총리는 퇴비 민원은 마을주민의 부탁을 대신해 제기한 것으로 권한을 남용한 것이 아닌 정당한 문제 제기였다는 해명자료를 발표했습니다. (관련 기사)
제천화재센터 감식 현장서 ‘찰칵’...닥터카 판박이
신현영 의원의 '닥터카 갑질'과 비슷한 사례가 여당에서도 있었습니다.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이 야당이던 2017년 12월 제천화재 참사 때였죠. 권석창 의원은 경찰과 소방대원의 제지에도 화재 현장 진입을 시도했고 "국회의원인데 왜 출입을 막냐"고 항의하던 그는 남택화 충북경찰청장에게 전화해 결국 현장에 들어갔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제공하는 옷을 입고, 감식반과 함께 한다는 조건이 붙었는데, 훼손을 막기 위해 유족 상당수도 현장 출입이 통제된 터라 비난 여론이 높았죠. 여기다 화재현장 일부를 촬영까지 해 원성이 높았습니다.
권 의원은 "특권이 아닌 의원활동의 일환으로 시민과 유족의 알 권리를 위해 들어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지만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권 의원은 이듬해 2월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고, 5월 대법원이 원심을 확정해 의원직을 잃었습니다. (관련 기사)
2018년에는 비행기 '탑승' 과정에서 여야 국회의원 모두 공항 직원에게 갑질을 해 입길에 올랐습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김성태 의원은 4월 신분증 없이 항공기에 탑승하는 과정에서 공항‧항공사 관계자들의 의전까지 받아 빈축을 샀죠. 김정호 의원은 신분증을 요구하는 공항 직원에게 “내가 국회 국토위원회 국회의원”이라며 고함을 쳐 '갑질' 비판을 받았습니다.
2019년에는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의 비서관이 '주차 갑질'로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 의원이 탄 차가 현충일 당일 비표 없이 "국회의원 차는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며 현충원 내에 무단 진입한 건데, 정작 이 의원은 현충원 정문에서 내려 걸어서 행사장에 들어갔고, 이후 비서진의 '갑질'이 벌어져 억울해했습니다.
2020년 9월에는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연설이 바로 포털사이트에 반영됐다"는 보좌진의 보고에 '카카오 너무하는군요. (국회) 들어오라고 하세요'라고 지시한 문자 내용이 포착돼 비판을 받았습니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포털을 통한 여론통제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거죠. 윤 의원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연설은 포털 뉴스 메인에 안 떴는데, 주 원내대표의 연설은 전문까지 떠서 알아보라 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낙연 대표까지 "엄중히 경고 드린다"고 비판했습니다.
'꼰대(kkondae‧BBC2)', '내로남불(naeronambul‧뉴욕타임스)', '개저씨(gaejeossi‧인디펜던트)', '학원(hagwon‧옥스퍼드 사전)'. '갑질'과 함께 최근 해외에서 주목받은 한국어입니다. 낯부끄러운 한국어가 원음 그대로 세계인의 입에서 불리는 일은 여기서 그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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