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화재 취약 공사 전면 중단, 교체 지시
전국 55개 방음터널 중 53개 플라스틱 사용
업계 "막대한 예산 들고, 지진, 산사태에 취약"
42명의 사상자를 낸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화재에 정부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업계는 그마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10년 전 경고를 묵살한 정부의 안전 불감증도 도마에 올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30일 오전 화재 사고 현장을 방문해 "정부가 관리하는 55개 방음터널과 지방자치단체 소관인 방음터널까지 전수조사하겠다"며 "공사 중인 방음터널이 화재에 취약한 소재를 쓰고 있다면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화재에 튼튼한 소재와 구조로 시공법을 바꾸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기존에 만들어진 방음터널은 전면 교체하거나 부분적으로 내화성 도료, 보드, 상부 개폐 등 화재 대피 시간과 구조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 조치를 보강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장대터널, 지하차도 등 내부 화재 발생 시 대처가 곤란한 교통시설 1,953개에 대한 긴급 점검도 즉시 실시한다.
방음터널 96%가 플라스틱... 정부, 올해서야 기준 마련 착수
이 같은 대처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방음터널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경고는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한국도로공사는 2012년 보고서를 통해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이 폴리카보네이트(PC)에 비해 착화 시점이 약 400초 빠르고, 최대 열 방출률도 더 높다"며 "이는 피해를 키울 뿐만 아니라 (재질 자체가) 화재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2016년 한국교통연구원은 화재 취약성 때문에 PMMA를 배제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방음터널의 화재 예방 관련 품질, 설치 규정도 미비한 실정이다. 소음진동관리법이 규정한 방음시설 성능, 설치 기준은 방음 효과만 고려됐을 뿐 안전성을 따지는 구체적 기준이 없다. 2016년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이 개정되면서 방음터널 방재시설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화재에 더 취약한 방음터널에 대한 규정은 일반 터널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1999년 '도로설계편람' 초판에 실린 '방음벽에 사용하는 재료 중 외부는 불연성 또는 준불연성이어야 하고 내부의 흡음 재료는 자기 소화성으로 연소 시 화염을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은 2012년 개정판에서 삭제됐다.
이날 국토부가 파악한 전국 방음터널 55개 중 96%가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화재가 발생한 방음터널의 재료인 PMMA은 6개소, 같은 플라스틱 일종인 PC는 47개소에 활용됐다. 강화유리가 쓰인 곳은 2곳에 불과했다. 정부가 잇따른 경고를 묵살하면서 화재 위험을 방치한 셈이다.
원 장관은 "비용, 채광, 경관, 조명 등 다른 이유로 안전을 도외시하고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미뤄왔던 정부의 업무 태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실책을 인정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말 감사원의 관련 지적이 있고 나서야 올해 7월 '터널형 방음시설 화재 안전 기준 마련 연구' 용역에 착수했다.
업계 "재료 바꾸면 기초부터 다시 지어야"
업계는 이번 정부 대책을 우려했다. 공사에 들어갈 예산이 막대할뿐더러 방음터널 자체가 사고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화성 재료를 쓰게 된다면 무게가 더 무거워져 구조체 자체를 바꾸고, 기초부터 다시 지어야 할 것"이라며 "대부분 플라스틱인 방음터널을 강화유리로 바꾸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고 말했다. 실제 영동고속도로 광교신도시 왕복 10차선을 덮은 방음벽 4,560m와 방음터널 2,060m의 공사비는 1,590억 원에 달했다.
방음터널이 지진이나 태풍, 산사태 등 다른 재해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강화유리도 충격이 가해지면 갈라질 수 있고 태풍이 불거나 지진이 나면 방음터널, 방음판이 날아가거나 무너질 수 있어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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