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한국 소수민족 교육 지원 현장을 가다
코이카·세이브칠드런, 오지 소수민족 교육 지원사업
장점 많았지만 2020년 지원사업 종료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출발한 지 7시간. 차는 두 시간이 넘게 오르막길을 돌고 돌면서 관광객들에게 '힐링 명소'로 유명한 옌바이성(省) 무깡짜이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베트남 계단식 논 특유의 황금빛을 기대했건만, 이미 두 달 전 수확이 끝난 산골은 황량했다. 오히려 흙바닥을 드러낸 논은 흐린 날씨와 운무 아래 이유 없는 슬픔을 뿜어내는 듯했다.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바라본 차창 밖 동네 풍경도 '힐링의 땅'과 거리가 멀었다. 남성들은 건설 현장에서 힘겹게 자재를 옮기고 있었고, 20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 엄마는 갓난아기를 업고 무심한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했다. 그 어디에도 국제적인 무념무상의 '힐링 명소'로 불릴 이유는 보이지 않았다. '척박한 생존의 땅.' 무깡짜이의 첫 표정은 시리도록 무미건조할 뿐이었다.
멀고 먼 학교… 방치된 아이들 중 40%만 고교 진학
평균 해발고도 1,000m 이상에 위치한 무깡짜이 산간 마을에는 6만7,000여 명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들 중 91%는 소수민족 몽족이며 베트남 주류인 비엣(킨)족은 2%에 불과하다.
중국의 탄압을 피해 베트남 북부 산간지대로 이주한 몽족은 봄에서 가을까지는 농사일을 하고, 10월 추수가 끝나면 남성들은 일용직 노동자로, 여성은 전통 양식의 직물 등을 만들어 관광객에게 판매해 생계를 꾸려간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수 없는 처지다. 부모들의 삶에 여유가 없다 보니 자녀들의 교육에도 신경을 쓰지 못한다. 특히 몽족은 고유 생활언어가 있지만 제대로 된 문자가 없어, 정규 교육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아이들은 베트남어를 배워야 하지만, 베트남어를 가르칠 학교도 부족하다. 통상 집성촌에서 6~20㎞ 떨어져 있는 산골 학교는 어린아이들이 걸어가기엔 너무 먼 데다, 가는 길도 험준하다. 그렇다고 매일 아이들을 등·하교시킬 여유가 있는 몽족 부모 역시 흔치 않다.
운 좋게 학교에 다닌다고 해도 몽족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가 보장된 건 아니다. 베트남은 중학교까지만 의무교육이라, 몽족 아이들의 40%만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무깡짜이 지역 교육부 관계자는 "중졸 아이들은 직업학교에서 기술을 배워 대도시로 가거나 가족들과 농사를 짓는 선택지밖에 없다"며 "외국인들이 계단식 논을 보기 위해 무깡짜이를 많이 찾은 이후엔 16세 이상 아이들 대부분이 돈벌이가 되는 인근 리조트 공사장에 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코이카·세이브더칠드런 지원사업 시작 "아이들이 변했어요"
베트남의 오지 산골 아이들의 딱한 사정을 알고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민 건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과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이었다. 2018년 이들은 함께 무깡짜이 아이들을 위해 학교 시설을 개·보수하고 책과 교육 자재를 개발·지원하기 시작했다.
무깡짜이 지원사업 대상이었던 모데 초등학교의 교사 응우옌카잉화는 "베트남어를 몰라 외지인만 보면 피해 다니던 아이들이 지원사업으로 베트남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더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게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아이들의 변화를 확인한 코이카와 세이브더칠드런은 '교사와 학부모 대상 교육 역량 향상' 사업도 진행했다. 130여 개가 넘는 교보재를 이용한 문해율 향상(LB·Literacy Boost) 교수법 등을 유치원·초·중등 교사들에게 전수하고, 교사들은 그 방식을 몽족 부모들에게 전달했다. 처음엔 쭈뼛쭈뼛하던 몽족 부모들도 변했다. 실제로 지원사업 초기 8개 반만 운영되던 유치원 학부모 클럽은 현재 56개까지 늘었다. 아이들의 지적 성장을 원하는 건 어떤 민족이라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6살 아이를 모데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몽족 여성 동(32)씨의 얼굴에도 희망이 가득했다. 그는 지난달 2일 한국일보와의 현지 인터뷰에서 "큰딸에게 글자를 가르치면 딸이 동생에게 신나서 또 배움을 전수한다"며 "낮에 농사를 짓고 지친 몸으로 집에 와도 이런 아이들을 보면 너무 기뻐 피곤함이 가신다"고 말했다.
베트남도 반기는 이례적 사업… 2020년 이후 한국 정부 지원 끊어
베트남 정부도 한국 등의 도움에 대한 고마움을 숨기지 않았다. 워낙 공적개발원조(ODA)를 많이 받는 베트남이기에 웬만한 도움에는 시큰둥하지만, 소수민족 관리 문제는 그들에게도 시급한 현안인 이유에서다.
4일 베트남 관보에 따르면, 베트남은 54개 소수민족의 체제 이탈을 막기 위해 5년마다 개최되는 당대회 참가 대의원 중 175명을 소수민족에게 의무 할당한 상태다. 교육 지원 등에 크게 도움을 줄 재정적 여유는 없으니 대표성이라도 보장하는 방식으로 간신히 체제를 유지해 온 셈이다.
코이카 베트남 사무소 관계자는 "수많은 베트남 ODA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소수민족 교육 지원사업처럼 베트남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고마움을 표현한 경우는 많지 않다"며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선도국의 지위에 오르려는 한국 정부 입장에선 이번 사업은 글로벌 취약계층을 돕는 실질적 효과와 동시에 양국 우호 관계 유지에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점이 가득한 소수민족 교육 지원사업은 후속사업 없이 2020년을 끝으로 종료된 상태다. 이와 관련 한국 정부는 최근 소수민족 교육 지원사업에 대한 추가예산 지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에 와서 한국이 준 책으로 베트남어를 알게 돼 너무 좋아요. 이제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거든요." 하노이로 다시 향하는 내리막길 내내 모데 초등학교 4학년 마이(가명·10)의 말이 아련하게 귓전을 맴돌았다. 마이는 2018년 사업 시작 연도에 1학년으로 입학해 베트남어를 무난히 익힌 아이였다. 떠나는 우리에게 마이는 또렷한 베트남어로 이렇게도 말했다. "한국과 세이브더칠드런 님들, 항상 건강하시고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