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수 소설 ‘몸과 여자들’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사회 속에서
다른 듯 닮은 듯한 '나'-엄마 '미복' 삶
몸·섹슈얼리티에 대한 온전한 이해란
편집자주
책, 소설, 영화, 드라마,가요, 연극 , 미술 등 문화 전반에서 드러나는 젠더 이슈를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 봅니다.
내년부터 보건 과목에 '섹슈얼리티'란 용어가 사라진다. 남녀가 아닌 포괄적 성별을 가르치게 하는 왜곡된 단어라는 주장이 수용된 결과다. 성에 관련된 행위, 태도, 감정, 욕망, 정체성 등을 모두 포괄하는 '섹슈얼리티' 교육은 "나를 이해하고 자아존중감을 키우는 데 필수"라는 전문가들의 반박은 거부됐다. 공공연한 성매매와 리얼돌 수입은 막지 못해도 섹슈얼리티 교육은 막아 낸 사회. 2023년 한국 사회의 몸과 섹슈얼리티 이해도다.
소설 '몸과 여자들'은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두 여자의 삶을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렸다. 2014년 등단 후 '황산벌청년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하고 지난해 장편소설 '헬프 미 시스터'로도 큰 호평을 받은 이서수 작가의 신작이다. 여성의 삶에 천착해 온 작가는 이번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데 길들여진 여자들에 대해 자문한 내용을 풀어낸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 1, 2부에서 각각 1983년생 '나'와 1959년생 엄마 '미복'이 자신의 몸에 얽힌 폭력의 기억과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섹슈얼리티를 고백한다. 3부는 '나'와 동시대를 살지만 몸에 대한 잣대가 다른 여성들의 현재를 담았다.
고백 속에 드러난 두 모녀의 삶은 다른 듯 닮았다. 유년 시절에는 공통적으로 내 몸을 긍정 혹은 부정하는 경험을 한다. 모두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체득하는 과정이다. 어른들이 "누가 보면 (애를) 굶기는 줄 알겠어"라고 엄마에게 핀잔하는 상황을 거듭 겪은 '나'는 자신의 몸을 말라빠졌다고 "객관적으로" 보게 돼 움츠러든다. "길쭉하고 날씬한" '미복'은 무용 교사에게 "어떤 남자에게 시집갈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는 칭찬(?)을 받고 우쭐해진다. 감정의 방향은 다르지만 발화점은 내가 아닌 타인이다.
주체성을 갖지 못한 섹슈얼리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미복'은 열세 살 때 담임 교사에게 추행을 당하고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다. 다음 세대인 '나' 역시 첫사랑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하지만, "그 시절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강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라고 회상한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각이 오랜 시간 세밀하게 박혀 있는 우리 현실을 투영한 사건들이다.
소설이 한층 깊어지는 건 닮은 듯 다른 둘의 삶이 드러나는 대목들에서다. 결혼 후 부부관계에 "의무감으로" 임했던 '나'가 이혼을 결정한 순간, 그 간극이 명확히 드러난다. 섹슈얼리티 자체를 억압으로 느끼는 여자에게, 엄마로서 '미복'은 "이혼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라고 말한다. 작가는 후반부(3부)에 '나'와 동시대를 살지만 몸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영석·소영을 보여줌으로써, 이런 차이들을 개인성의 문제로 끌고 간다. 책을 덮을 때쯤, 단일한 여성의 몸·섹슈얼리티에 대한 잣대는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에 미친다.
'몸과 여자들'에서 고백은 형식이자 메시지다. "글쓰기의 가능성이 많아지는 건 우리가 경험하는 그 순간, 경험하는 것의 의미가 부재하기 때문"(아니 에르노 '여자아이 기억')이라는 문장에서 '글쓰기'를 '고백'으로 치환할 수 있다. 내 몸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 내재화됐던 삶,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제야 다시 불러보고 명명함으로써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기존의 세계에 조금씩 균열을 낸다. 대단한 자기 극복의 결론이 아니다. 고백, 글쓰기란 시도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보부아르는 말했다. 섹슈얼리티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고. 이 소설의 시작점은 여성의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그리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어지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작가의 말' 일부) 작가는 이 작품으로 유의미한 하나의 시도를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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