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다<15>인천 장봉도
이름대로 가늘고 긴 섬
좌우로 바다 보며 트레킹 가능
한때 조선시대 3대 어장
지금은 김 양식 주업
연도교 착공·소음피해 지원 염원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삭풍이 부는 겨울 섬의 매력은 호젓함이다. 쓸쓸함이라고 해도 좋겠다. 사람이 없으면 사람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겨울 섬은 내부로 침잠하는 아주 좋은 여행지다.
지난달 17일 인천 옹진군 북도면 장봉도로 가는 날 수은주는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졌다. 이튿날도 영하 12도로 예보됐다. 인천 영종도 삼목항을 출발한 카페리 여객실에는 등산객 30여 명과 주민 등 50여 명뿐이었다. 흔한 낚시객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한적한 배 안 풍경이었다.
장봉(長峰)도는 이름에서 보듯이 봉우리들이 길게 늘어선 섬이다. 장봉선착장에서부터 성산봉(114m)~국사봉(150m)~봉수대(115m)~가막머리 쉼터(106m)가 길게 등뼈를 이룬다. 산이 높지는 않지만 바다를 좌우로 볼 수 있고 오르막 내리막이 잘게 섞여 있어 등산 애호가들의 입맛에 딱이다.
영종도서 배로 40분이면 닿는 섬
영종도에서 뱃길로 40분에 불과한 장봉도는 북도면 4개 섬 중 가장 바깥에 있다. 삼목항을 출발한 페리는 10분 만에 신도에 일부 승객들을 부리고 30분 뒤 장봉도에 도착했다. 가운데 있는 시도, 모도는 신도와 다리로 연결돼 있다. 신도는 또 영종도와 이어지는 연륙교 공사가 2025년 완공 예정이다. 북도면 3개 섬이면서 섬이 아닌 그런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섬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장봉도의 장점은 육지와 지근거리에 있어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카페리가 2시간마다 하루 7차례 운항하고 장봉도를 나오는 막배가 오후 7시니까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나올 수도 있다. 장봉도로 들어가는 막배는 오후 8시 10분이다. 장봉도에는 택시가 없어 차를 갖고 들어가는 게 좋다. 뚜벅이 여행객들을 위해 공영버스가 시간마다 한 바퀴(섬 북쪽으로는 도로가 없어 실제로는 아래쪽 한 바퀴) 돈다. 주말에는 30분 간격이다.
장봉항 입도와 동시에 제일 먼저 마주치는 건 인어상이다. 카페리는 100m쯤 떨어진 두 개의 선착장을 물때에 맞춰 사용하는데 그 중간에 인어상이 있다.
인어상의 전설에 대해 장봉도 주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옛날 옛적 한 어부가 섬 남쪽 날가지 어장에 쳐 놓은 그물에 인어가 걸렸다. 뱃사람들이 그 인어를 측은히 여겨 풀어주고 나니 연달아 삼일 동안 풍어를 이뤘다고 한다. 생명을 구해준 은혜를 삼일만 갚았다니 "쩨쩨하다"는 말도 나올 법하지만, 장봉도 어장이 조선시대 전국 3대 어장으로도 꼽혔다고 하니 인어의 보은이 ‘3일만’이 아니라 ‘계속된 3일’이라고 섬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장봉도가 과거 영화를 누리던 시절은 건어장(乾魚場) 해변에 유물로 남아 있는 ‘곳배’ 한 척에서 찾을 수 있다. 건어장이라는 지명도 물고기 말리던 곳이라는 뜻이니 맞춤한 장소에 서 있는 셈이다. 곳배라는 명칭은 닻 역할을 했던 ‘고’라는 장치에서 유래됐다. 인천과 충청, 전라 등 주로 서해안에서 쓰였던 곳배는 자루망에 돌을 가득 채운 ‘고’를 닻처럼 이용해 정박한 뒤 위아래 두 개의 가로막대(암해, 수해)에 연결된 그물을 내려 떠다니는 새우를 주로 잡았다. 고충신 장봉도 발전협의회장은 "내가 젊었을 때까지 곳배가 이 일대를 날개처럼 벌려서 뒤덮었다"면서 "타향에 살다가 귀향한 뒤 아버지 곳배를 물려받아 빚도 갚고 재산도 일궜다”고 말했다.
김 양식으로 연간 10억 매출
장봉도 특산물은 뭐니 뭐니 해도 김이다. 이곳 주민들은 10월에 지주를 박고 그물을 늘인 뒤 김 양식을 시작해 4월 초까지 김을 딴다. 보통은 6번, 많으면 7번까지 김을 수확한다. 장봉도 김은 지주를 박고 그물을 펼쳐 여기에 붙은 김을 따는 전통 방식으로 재배한다. 깊은 바다에 그물을 띄워 김을 키우는 부유식에 비해 김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썰물 때 장시간 햇빛을 받아 파래도 안 끼고 맛과 향이 뛰어나다. 15가구에서 한 해 20여만 속(속당 100장)을 생산해 1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린다.
김 외에도 주민들은 백합과 바지락, 굴을 채취한다. 최근 백합 생산량이 줄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갯병으로 수확량이 더 떨어져 어민들의 시름이 깊다. 장봉어촌계장 정연희(63)씨는 “장봉도는 고기 잡기보다 김 양식과 어패류 채취가 주업”이라면서 "하지만 꽃게가 유명한 백령도나, 관광객이 많은 강화도 등에 비해 어족자원이나 관광자원이 부족해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바다 감상하는 트레킹 코스 인기
장봉도는 요즘 트레킹의 성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8.2㎞(1코스)에서 3.2㎞(2코스)까지 다양한 길이의 7개 코스가 섬을 가르고 있다. 2020년 3만7,000명이던 관광객이 입소문을 타고 늘면서 2년 만에 10만 명대로 올라섰다. 장봉선착장 등산로 입구에서 1, 2코스를 거쳐 섬 북서쪽 끝인 가막머리전망대까지 이르면 만만치 않은 운동량을 기록한다. 돌아올 때는 해안길인 4코스(3.9㎞)를 따라 바다를 감상하며 건어장까지 온 뒤 버스를 타고 장봉선착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
다만 낭떠러지를 끼고 있어 야간에는 4코스를 피하는 것이 좋다. 중간중간 자주 눈에 띄는 고라니는 덤이다. 가막머리전망대는 낙조를 감상하는 최고의 포인트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어 반드시 헤드 랜턴 등을 준비해야 한다.
장봉도에서 공영버스를 운전하는 최지원(47)씨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오전에 40명 정도 등산객을 실어 나른 게 전부”라면서 “하지만 야트막한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 봄부터 가을까지는 등산객이 가득 찬다”고 전했다.
5코스(4.6㎞) 건어장에서 야달선착장 방향으로 자갈해변을 따라 300m쯤 가면 유튜브로 유명세를 탄 해식동굴도 보인다. 동굴 안쪽에서 바깥을 보며 찍으면 멋진 인생사진을 하나 건질 수 있다. 북쪽 해안을 따라 걷는 7코스(4.4㎞)는 눈이 오면 더욱 호젓해 연인끼리 걸으면 좋다.
장봉도 유일의 관광해설사 이선희씨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발전협의회 분들과 트레킹 코스를 개발하고 여행자센터도 자비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산과 바다, 낙조와 청명한 하늘을 즐길 수 있는 장봉도를 많이 찾아 달라”고 말했다.
장봉도-모도 연도교 공사 염원
장봉도 주민들의 바람은 뭍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2025년이면 이웃한 신도와 시도, 모도는 영종도와 연도교로 이어지고 장봉도만 진짜 '섬'으로 남는다. 가장 우려하는 것은 섬 주민 감소다. 10년 전 장봉초등학교가 학생 수 감소로 삼목초교 장봉분교로 강등됐다.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인천으로 가야 해 자녀가 있는 젊은 층들은 섬을 떠날 수밖에 없다.
소외감을 느낀 장봉도발전협의회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 장봉도~모도 연도교 공사를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약속을 지역구 국회의원한테 받아 냈다. 고 회장은 “주민들의 연도교 설치 공사에 대한 염원이 강해 지역구 국회의원이 화답하고 돌아갔다”면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2025년 공사가 착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행기 피해소음 대책도 장봉도 주민들의 염원이다. 인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서 수시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 소음으로 피해를 입은 지 20년이 넘는다. 특히 밤이면 비행기 소음이 옅은 천둥소리처럼 들려 고통을 받는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공항과 제일 가까운 장봉1리 일부 주민들만 보상과 지원을 받고 있다. 고 회장은 “백령도 등은 어장도 풍부하고 서해5도지원특별법에 따라 공항도 짓는데 더 가까운 장봉도는 자꾸 낙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다리로 육지와 얼른 이어져야 3대 어장으로 누렸던 옛 영화를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봉도는
위치 : 인천 옹진군 북도면 장봉리
인구수 : 534가구 985명
주요 특산품 : 김, 백합, 바지락. 굴
트레킹 코스에는 봉수대가 있다. 일반적으로 보던 봉수대와 다른 서해 봉수망(烽燧網)의 한 기점으로 다른 봉화를 받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매일 초저녁에 한 번 봉화를 올리는 봉화대라 봉수대하고는 차이가 있다는 게 지역주민들 설명이다. 장봉도는 대대로 서해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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