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레이건 고별연설
현대 미술 일반을 비관주의적 ‘퇴폐-몰락의 예술’로 배척한 나치 미학의 우두머리인 제3제국 건축부 수장 알베르트 슈페어가 자신의 건축적 지향을 로마제국의 유적(폐허)에 둔 점은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그는 총통 관저와 베를린 올림픽경기장, 민중대회당 ‘폴크스할레(Volkshalle)’의 웅장한 대리석 돔을 설계하며, 그것들이 천년 뒤 폐허의 유적으로써 자신과 제3제국의 위대함을 증언하길 원했다. 그에게 폐허는 미학적 생명의 완성이었고, 좌절한 미술학도 출신인 히틀러는 정치와 미학이 어떻게 동조해야 하는지 역겨울 만큼 잘 이해한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어록’은 삶의 유적이다. 사람이 죽고, 잊히고, 말의 맥락은 기억에서 사위더라도 말 자체는 남는다는 사실을 야심 찬 정치인들은 잘 알고, 또 알아야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역대 미국 대통령 인기투표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해온 데도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 한마디의 덕이 적지 않을 것이다.
미국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동서 냉전을 끝낸 이력보다 ‘위대한 커뮤니케이터’라는 전설적인 지위를 확립함으로써 퇴임 후에도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배우 출신답게 대중 연설 퍼포먼스에 능했던 그는 1987년 6월 베를린 장벽 앞에서 행한 연설, 특히 “저 장벽을 허물라(tear down the Wall)"라는 힘찬 말 한마디로 반공 통치 철학과 비전을 요약하며 ‘연설로 냉전을 허문 대통령’이라는 전설을 창조했다.
하지만 그의 1989년 1월 11일 대국민 고별 연설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평화, 자유의 화려한 수사들은 전쟁 등 그의 재임 중 결단을 정당화하고 외교적 성과를 치장한 장식에 불과했고, 그 치적 대부분은 퇴임 후 ‘콘트라 스캔들’과 걸프전 등을 통해 빛을 잃었다. 그는 폐허의 미학, 즉 모든 오늘이 미래의 과거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