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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힌 징용 조선인의 삶, 눈감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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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힌 징용 조선인의 삶, 눈감을 수 없었다"

입력
2023.01.14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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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 조선인은 전쟁 소모품이었다' 펴낸 문창재 작가

문창재 작가가 6일 한국일보 본사를 찾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문창재 작가가 6일 한국일보 본사를 찾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1938년 4월 1일. 일본은 일본 점령지를 대상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라는 '국가총동원법'을 공표한다. 세계 열강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서 한계에 직면한 일본이 한반도의 인력 수탈을 본격화한 것. 이후 '노무 동원'이라는 미명하에 많은 조선인이 중국 만주, 러시아 사할린, 태평양 남양군도, 동남아시아로 끌려가 중노동에 시달렸다. 생면부지 이국땅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목숨이 연기처럼 스러졌지만 그 끔찍한 숫자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한국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실장 등을 지낸 기자 출신의 문창재(77) 작가는 징병 조선인의 수난사를 296쪽 분량의 책 한 권으로 고발했다. 지난달 펴낸 저서 '징용 조선인은 전쟁 소모품이었다'는 폐암 4기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 혼신의 힘을 다해 매달려 온 작업의 결과물이다.

출발은 2년 전이다. 최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문 작가는 2021년 KBS 다큐멘터리 '태평양 전쟁의 한국인'을 우연히 시청하고 짐승처럼 울부짖던 징용 조선인들의 처참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평생 언론인으로 살면서도 그 비극의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과 함께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일본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시절 징용 피해자들을 만나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세상을 등졌어요.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기구한 인생들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전에 뭐라도 남겨야겠다는 의무감이 있었습니다."

5년째 지난한 암투병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징용 조선인 관련 자료와 문서를 손에 넣기 위해 1년간 발품을 팔았다. 전국 고서점과 도서관 수십 곳을 다니며 댐과 벙커, 탄광, 군수공장에서 조선인이 희생된 상황과 증언, 일기와 신문기사 등 '팩트'를 모았고, 그를 토대로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뀄다. 그는 "징용이 일본 본토에서만 있었던 일로 알려졌지만 실상 징용의 범위는 그보다 훨씬 광범위했다"며 "중남부 태평양과 북태평양의 섬, 시베리아 최북단까지 끌려간 이름 없는 조선인만 8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마저도 일본인이 조사한 통계"라고 탄식했다.

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문창재 작가. 서재훈 기자

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문창재 작가. 서재훈 기자

문 작가는 "징용은 한국과 일본 양국 간의 가장 뜨거운 외교 현안이지만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제징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는 차치하고라도, 우리 스스로가 그 비극을 똑바로 알고자 연구하고 증거를 남기는 데 게을렀다는 일갈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나라를 뺏긴 것만도 분한데 강제로 끌려가 혹사당하고 목숨까지 잃은 것은 민족 자존의 문제"라며 "그런데도 우리 손으로 만든 책과 소설은 몇 권이며, 영화는 몇 편이나 되는가"라고 되물었다.

이 책은 시작에 불과하다. "일제 잔재를 기록으로 남기는 차원에서 이름 없는 서민들의 역사를 발굴하고 싶다"는 그는 "병을 생각하면 벅찬 일임이 분명하지만 기록자로서의 부채를 힘 닿는 만큼 없애고 갈 생각"이라며 "조선인 원폭 희생자를 다룬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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