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도피 쌍방울 실소유주 김성태 체포 경위
4일 한국 주재관이 태국 이민국에 제보해 추적
불법체류 다툴 땐 송환까지 수개월 걸릴 수도
검찰, 도피 조력자 6명 영장... 12일 영장심사
쌍방울그룹 실소유주인 김성태 전 회장이 태국에서 체포되면서 쌍방울의 각종 비리 혐의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수사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1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회장은 태국에서 통역 등을 수행한 교민 A씨의 동선을 현지 경찰이 추적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태국의 우리 경찰 주재관은 1월 초 교민 B씨로부터 "태국에 체류하는 A씨가 뉴스에 나오는 사람(김성태 전 회장) 등 2명과 자주 동행하며 도와준다"면서 "두 사람은 태국어와 영어가 안 되니 A씨의 도움을 받는 듯하다"는 제보를 받았다.
주재관은 이에 1월 4일 태국 경찰 이민국을 찾아가 "김 전 회장 등의 신병을 확보하려면 A씨의 추적이 핵심"이라며 첩보 제공과 함께 사법 공조를 요청했다. 태국 경찰은 곧바로 A씨 동선을 추적해 7일 만에 성과를 냈다. 이달 10일 태국 수도 방콕과 북쪽에 인접한 빠툼타니 소재 골프장에서 김 전 회장과 양선길 쌍방울그룹 회장이 검거된 것이다.
불법체류로 인한 이민법 위반 혐의로 붙잡힌 김 전 회장 등은 12일 태국에서 불법체류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다만, 김 전 회장이 법정에서 불법체류가 아니라고 주장하면 정식 재판이 열리게 돼 국내 송환까지 5, 6개월 정도 걸릴 전망이다. 김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쌍방울그룹 재경총괄본부장 김모씨도 지난해 12월 태국에서 검거된 뒤 현지 법원에서 불법체류 혐의를 다투면서 송환이 지연되고 있다. 검찰은 절차가 복잡한 범죄인 인도보다는 태국 정부의 신속한 강제추방을 기대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지난해 5월 31일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태국으로 이동해 8개월간 도피생활을 해왔다. 검찰은 지난해 8월 김 전 회장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요청하고 여권을 무효화했다.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는 김 전 회장의 도피를 도운 김 전 회장 친동생과 폭력조직 출신 인사를 비롯해 쌍방울그룹 관계자 6명에 대해 9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해외로 송금해 김 전 회장 등의 도피생활을 지원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 삭제 등 수사에 대비해 증거를 인멸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특히 태국을 번갈아 방문하며 김 전 회장이 즐기는 김치와 김, 고등어 등을 공수했다고 한다. 김 전 회장 생일에는 고급 양주와 해산물을 가져갔고, 국내 유명 가수까지 초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심사)은 12일 열린다.
김 전 회장은 2,000억 원대 배임과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회장 측은 제우스1호투자조합의 조합원 출자 지분을 저가로 빼앗아 김 전 회장 지분으로 귀속시킨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제우스1호는 쌍방울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나노스의 전환사채(CB) 관련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나노스 CB 매수 자금으로 활용하려고 회삿돈 수십억 원을 페이퍼컴퍼니로 빼돌린 혐의도 있다.
그는 2018~2019년 쌍방울이 발행한 200억 원의 CB 거래 과정을 제대로 공시하지 않은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도 있다. CB 발행과 자금 세탁을 거친 돈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변호사비로 대납됐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김 전 회장은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서도 검찰 수사를 받을 전망이다. 검찰은 2019년 전후 대북경협 사업을 위해 그룹과 계열사 임직원 수십 명을 동원해 수백만 달러를 중국으로 밀반출한 뒤 북측에 건네려 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 등)를 수사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회장 혐의 가운데 이재명 대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명확하지 않지만 그가 어떤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수사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며 "김 전 회장을 빨리 국내로 송환하는 게 급선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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