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로 꽃가루를 옮기는 꿀벌 등 화분매개 곤충의 수가 줄어 농작물 생산량이 감소했고, 그 영향으로 전 세계에서 매년 4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화분매개곤충 감소가 인류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는 여럿 있었으나, 인류 건강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을 계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1일 미국 하버드대 환경보건학부·영국 옥스포드대 등 국제 공동연구진이 학술지 '환경건강전망'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화분매개체 감소로 전 세계 과일·채소 생산량이 3% 이상 줄었다. 작물별로는 과일 4.7%, 채소 3.2%, 견과류 4.7%가 감소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화분매개 의존 작물 63종의 수확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약 20%의 화분매개 곤충이 멸종위기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후위기와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높이기 위한 집약농업 등 인위적 요인으로 곤충들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지난해 꿀벌 약 77만 마리가 사라지는 등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연구진은 작물 생산량 감소로 건강한 식품 소비가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악화될 것으로 봤다. 이들이 추정한 초과 사망자는 전 세계 약 42만7,000명에서 최대 69만1,000명에 달한다. 초과 사망자는 일정 기간에 예상할 수 있는 통상 수준을 초과해 발생한 사망자 수를 말한다.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 지역은 연간 최대 27만8,000명이 초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연구대상 작물을 섭취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영양소와 질병 영향에 대한 최신 연구를 참고해 분석한 결과다. 연구진은 건강한 식재료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의 영양상태가 나빠지는 것은 물론, 심장병·뇌졸중·당뇨병·약물사용장애 등 여러 위험 요소가 높아진 것으로 추정했다.
사라진 화분매개체로 인한 작물 생산량 감소는 저소득 국가에서 두드러졌다. 하지만 건강 피해는 주로 중국·인도·러시아 등 중간소득 국가에서 나타났다. 이 나라들은 그동안 저소득 국가가 생산한 저렴한 농산물 수입에 의지했지만, 생산량 감소로 가격이 오르면서 국민들의 충분한 채소 섭취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소득별로도 저소득층보다 중간층의 초과 사망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역시 작물가격 상승으로 수입 채소를 사먹던 기존의 식습관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는 비타민A와 엽산 등 미량영양소 감소나 농부의 소득손실 등 영향이 포함되지 않아 초과 사망자 숫자도 보수적으로 추정했다"며 "양봉 등으로 화분매개 곤충을 늘리는 것에 한계가 있는 만큼 자연 서식지를 복원하고 농업에서 살충제 사용을 줄이는 등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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