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6월 국립중앙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 등
올해도 대중 사로잡을 전시 풍부
국내 미술관들이 지난해까지 선보인 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기 전에 준비했던 거죠. 올해부터는 코로나19 유행 기간에 준비했던 전시들을 보여주게 될 겁니다. 이건희 컬렉션 열풍으로 높아진 국내외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 고민이 많을 겁니다.
고동연 미술사가
올해도 미술 애호가들의 마음을 뒤흔들 대형 전시들이 찾아온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 측이 국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의 순회전이 지난 2년 동안 이어졌고 지난해 세계적 아트페어(미술장터)인 프리즈 서울이 한국에서 열리면서 한국 미술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굵직한 미술관마다 이런 열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대규모 전시를 계획하고 있지만 한국 미술계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목소리도 나온다.
카텔란·호퍼·김환기·장욱진....관람객 이끌 대형 전시
올해 주목할 해외 작가 전시는 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미국 사실주의 대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 개인전이다. 작가의 인지도나 예술성 측면에서 두루 미술 애호가들의 시선을 잡을 블록버스터급 전시다.
이달 31일부터 7월까지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첫 한국 개인전을 갖는 카텔란은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논쟁적 작가 중 하나다. 현실의 구체적 대상과 대중문화를 빌려서 날카로운 블랙 유머를 구사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2019년 세계적 미술장터인 ‘아트바젤 마이애미’ 전시장에서 바나나를 벽면에 테이프로 붙인 작품 ‘코미디언’을 출품했는데 한 행위예술가가 바나나를 벽에서 떼내 먹어버리면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카텔란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변기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붙인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리움미술관 측은 지난 2011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렸던 그의 회고전 이후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조각부터 설치, 벽화까지 작가의 주요 작품들을 한번에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공동대표(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는 “카텔란은 쉽게 이야기해서 자신의 작품을 사는 사람들을 골탕먹이는 작가”라면서 “뭔가 있어보이는 것처럼 행세하는 현대미술의 이중성과 표리부동함을 호되게 때리면서도 그것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작가다. 재미있는 전시를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19년 인기를 끌었던 데이비드 호크니 개인전에 이어서 올해는 세계적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4월 20일부터 서울 서소문본관에서 선보인다. 도시의 고독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호퍼의 작품들은 국내에도 인테리어용 포스터 등으로 대중적 인기를 끌기도 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함께 기획한 이번 전시에서는 호퍼의 작품 150여 점을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아직 출품작이 완전히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호퍼의 ‘자화상’을 포함해 그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모은 ‘산본 호퍼 아카이브’가 한국으로 건너온다. 아울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이달부터 열리는 일본의 팝아트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 작품이 160여 점에 달한다.
영국 런던을 대표하는 '내셔널갤러리' 소장품이 대거 한국을 찾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소식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6월부터 런던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그림 52점을 선보이는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갖는다. 초기 르네상스에서 20세기 초까지 방대한 컬렉션을 구축한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소장품을 국내서 전시하는 건 처음으로, 렘브란트와 보티첼리 등 서구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서유럽 회화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4월부터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에서 첨단을 달리는 작가들을 만나는 장이 될 예정이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비엔날레에는 30여 개국 작가 80명(팀)이 참여한다.
미술 애호가들을 전시장으로 이끌 한국 거장들의 대형 회고전도 준비됐다. 리움미술관의 모태인 호암미술관은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재개관하면서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인 김환기의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점화뿐만 아니라 초기작까지 망라해 김환기 추상화의 근원과 정수를 보여준다.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적 정서를 잘 구현한 대표적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화가 장욱진의 회고전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6월부터 10월까지 문을 연다
한국 실험미술도 조명하는 흐름도 보여
한국 실험미술을 재조명하면서 한자리에서 작품들을 만나는 기회도 마련된다. 국내 미술관들의 맏형격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그동안 단색화, 민중미술을 조명한 활동의 연장선에서 올해는 ‘한국의 1960-70년대 실험미술’ 전시를 5월부터 두 달 동안 개최한다.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기획한 전시로 김구림과 이승택, 정강자 등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100여 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구겐하임미술관(9월)과 로스앤젤레스 해머미술관(2024년 2월)에서도 열린다. 서울관은 8월부터 내년 1월까지 김구림 개인전도 갖는다. 실험미술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에 걸쳐 등장한 미술 창작 경향으로 작품들은 평면적 회화에만 머물지 않고 행위예술 등 분야에 걸쳐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실험미술 선구자들이 많이 돌아가셨기에 지금쯤 전시로 짚어줄 상황”이라면서 “특히 김구림 개인전의 경우, 작가가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아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올해 전시 목록에서 한국 미술계만의 시각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전체 전시들을 관통하는 큰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 평론가는 “좋게 이야기하면 풍성한 전시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과연 시대를 이끌어갈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전시들인지는 의문이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수년을 버틴 미술계가 블록버스터로 회귀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모마(MoMA·뉴욕현대미술관)나 프랑스 퐁피두센터는 올해 여성이나 사진처럼 주제나 장르면에서 큰 흐름을 꾸준히 보이려고 한다”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실험미술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것 외에는 ‘정체성이 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고 미술사가는 “실험미술 전시가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리는 데는 그들이 작품을 연구해서 저렴하게 매입하려는 의도도 있다”면서 “한국으로서는 단색화 이후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우리 스스로 연구가 충분히 돼 있는 상황인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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