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지난 회에서 성폭력 범죄와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형사재판에서 성인지감수성의 핵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은밀하게 벌어지는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피해자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일 때가 많은데,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평소와 똑같이 지냈다'는 정도의 사정으로 무죄를 다투며 피해자를 고통스럽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위계질서하에서 상하관계가 있는 권력형 성범죄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한편으로, 피해자 진술의 중요도가 높아지면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로 지목당한 남성이 무고하게 유죄판결을 받을 위험성도 높아질 수 있다. 본인의 무고함을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 예컨대 폐쇄회로(CC)TV, 복구된 카카오톡 대화내역, 사진, 통화녹음 등이 없었다면, 일관되고 경험칙에 부합하는 피해자 진술에 의해 무고하게 유죄판결을 받았을 수도 있는 사건이 실제로 존재한다.
물론, 성폭력 발생 건수에 비하면 성폭력 무고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허위사실로 타인을 성범죄자로 고소하는 것은 그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도 미투 운동이 촉발되던 2018년경 합의금 목적의 성폭력 무고를 의뢰받을 뻔한 적이 있다. 다행히 사건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무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잘 타일러 돌려보냈다.
성폭력 무고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뉴스 기사에서 보듯이 합의금을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사건을 꾸며 성폭력 무고를 하는 범죄 집단도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동기로 성폭력 무고가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다.
무고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를 살펴보면, 짧은 만남 후 동의하에 성관계를 했는데 남자가 연락이 뜸해지자 강간을 당했다고 허위 고소를 하는 경우가 있다. 피해의식과 보복감정이 동기가 되는 것인데, 그야말로 남성이 잠재적 성범죄자가 되는 순간이다. 불륜 관계에서 동의하에 성관계를 했지만 배우자에게 들통이 나자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무고하는 경우가 있다. 애인관계에서 상대방으로부터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무고하는 경우도 있고, 직장동료 사이에서 서운한 감정이 커져 무고하는 경우도 있다. 택시기사가 기분을 나쁘게 했다고 성추행으로 허위고소를 했다가 블랙박스 분석결과 허위사실임이 밝혀져서 초범임에도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위 사례의 남성들은 적극적으로 증거를 수집했고, 피해자의 진술을 객관적인 증거로 탄핵하였기에 누명을 벗을 수 있었지만, 그러한 증거가 없었더라면 성범죄 누명을 쓰고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무고죄는 국가의 수사 및 재판기능에 혼선을 가져와 불필요한 사회비용을 발생시키고 고소를 당한 사람에게는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는 중대한 범죄이다. 특히 성범죄 무고의 경우 피무고자에게 엄중한 형사처벌 외에도 2차 피해가 발생할 위험성이 큰 점을 고려하면 그 죄질이 더욱 좋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형사재판에서 '성인지감수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곧바로 성범죄 무고로 연결된다는 연관관계를 설정하여 '성인지감수성'이 가지는 가치를 폄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성범죄 피해자'와 '성범죄 무고 가해자'를 동일선상에 놓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성인지감수성'과, 허위사실로 타인을 고소하는 죄질 나쁜 범죄인 '성범죄 무고'는 원칙적으로 별개로 보아야 한다.
성범죄 무고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이고,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법원과 그 이전 수사단계에서 경험칙을 바탕으로 피해자 진술의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 일관성, 구체성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무고한 무고(誣告)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감정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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