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입양동물 학대사건’ 범인은 어떻게 붙잡혔나
지난해 12월 5일 저녁, 강원 춘천시의 한 주택가. A씨의 자택 문 앞을 두고 실랑이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문 앞에 선 B씨가 요구하는 것은 반려견 '깨순이'의 행방이었습니다. 깨순이는 불과 12시간 전, A씨에게 입양된 반려견이었습니다.
깨순이를 입양 보낸 구조자는 이날 낮에 A씨에게 반려견이 잘 있는지를 물어봤다가 이상한 내용의 답장을 받았습니다. 문자 안에는 '환기하려고 문을 열어뒀는데 개가 나가버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자세히 물어보려 하자 A씨가 연락을 끊어버렸고, 난감해진 제보자가 직장인 유기동물 봉사모임 '와카롱'(Walk-alnong)의 관계자 B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B씨는 A씨에게 '개가 어디로 갔는지 알려줘야 골든타임 내에 찾을 수 있다'며 협조를 요청했지만, A씨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대치가 이어지는 도중, B씨는 A씨의 이웃을 만나 석연치 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옆집에서 강아지들 비명 소리가 심하게 났었어요. 일주일 전에도 하도 심해서 경찰을 불렀어요.
저희뿐 아니라 다른 주민들도 경찰에 신고해서 몇 번 왔다 갔을걸요?
단순히 동물을 잃어버린 게 아닐 것 같다는 직감이 드는 대목이었습니다. B씨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과 함께 마침내 A씨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A씨의 집에는 새끼 강아지 3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깨순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물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이라 와카롱은 A씨로부터 소유권 포기각서를 받아낸 뒤 강아지들을 춘천시 동물보호소에 맡겼습니다.
사건을 경찰에 맡겼지만, B씨는 불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은 현실이 됐습니다. A씨가 상습적으로 반려견을 입양한 뒤 학대를 반복해온 끔찍한 학대범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그리고, 학대의 마지막 희생양은 바로 깨순이였습니다.
지난 6일 춘천경찰서는 A씨를 동물학대 혐의로 구속한 뒤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A씨의 휴대전화 속에 있는 동물학대 영상이 44개를 확보했습니다. 이 영상이 찍힌 날짜를 토대로 경찰은 A씨가 2021년 1월부터 약 2년간 8마리의 개를 입양한 뒤 상습적으로 학대했다고 밝혔습니다. 영상 속 A씨는 강아지의 목덜미를 잡아 집어던진 뒤 발버둥치는 강아지를 발로 걷어차는 등의 행동을 보였습니다.
경찰은 영상 내용을 토대로 A씨가 학대한 8마리 중 1마리는 목숨을 잃고 2마리는 행방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어떤 개가 죽었는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동그람이 취재 결과, 목숨을 잃은 개는 B씨가 찾던 깨순이로 확인됐습니다. 목숨을 건진 5마리는 춘천시 동물보호소에 맡겨졌고, 이중 2마리는 가족을 찾았다고 합니다.
경찰은 A씨가 구속된 사유를 묻자 "정확한 이유를 밝힐 순 없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그의 휴대폰을 통해 지속적으로 최소 8마리 이상을 학대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여죄에 대한 증거인멸 및 향후 재범 가능성 등을 감안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B씨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 경찰과 처음 마주할 때 증거인멸을 한 차례 시도했습니다. 당시 경찰 조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A씨는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무언가를 반복해 삭제했습니다. 이 모습을 목격한 B씨가 경찰에게 제지를 요청했지만, A씨는 “내 사생활”이라며 행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경찰은 최초 고발 당시에는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건을 처음 담당한 수사관은 고발인 B씨에게 “반려견을 방치한 것 이외에는 혐의점을 찾을 수 없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수사관이 교체된 뒤에야 수사가 적극적으로 진행돼 주변 CCTV를 확인하는 등 탐문수사가 이뤄졌습니다. CCTV에는 A씨가 깨순이를 끌고 외진 곳으로 가는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A씨의 학대 행각을 막아선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떠난 깨순이의 사체가 아직 확인되지 않아서입니다. B씨는 “경찰에 깨순이의 사체를 찾았느냐고 물어봤지만 명확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며 답답해했습니다. 동그람이도 경찰에 목숨을 잃은 개의 사체를 확인했느냐고 물었지만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사안이라 경찰이 공개한 사실 이외에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답변을 거절했습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도 죽은 깨순이와 행방이 묘연한 개 2마리 찾기에 나섰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구체적인 학대 내용을 규명하는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며 검찰에 제출할 시민 탄원서를 모집하는 중입니다. 동물자유연대 송지성 위기동물대응팀장은 "경찰이 적극적인 수사로 구속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은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라면서도 "경찰 수사 단계에서 사건의 실체가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채 검찰로 넘어간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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