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특정 집단의 사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공익을 위한 싸움
사익 아닌 공익 위한 정책 논쟁 필요
정치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대부분의 정치학자는 정치가 기본적으로 '권력을 위한 투쟁'이라는 데 동의한다. 쉽게 말해 정치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물질적·정신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에 필요한 '힘(권력)'을 얻기 위한 싸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넓은 의미에서 정치는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 내재한다. 사내 정치, 학내 정치 등의 용어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회사나 학교 같은 일상 공간에서 이뤄지는 권력을 얻기 위한 싸움이 모두 정치 현상이다. 정치의 이러한 권력 투쟁적 측면에 주목하여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샷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는 정치를 '길거리 싸움(street fight)'에 비유하기도 했다.
정치가 이처럼 기본적으로 '길거리 싸움'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정당 간 또는 정당 내에서의 정파 간 싸움이 조직 폭력배의 '길거리 싸움'과 똑같을 수는 없다. 이는 무엇보다 싸움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직 폭력배들의 길거리 싸움은 기본적으로 조직의 이익과 조직원들의 이익, 즉 '사적 이익'을 위한 싸움이다. 반면 국가 권력을 두고 싸우는 정치의 경우 싸움의 목적은 부수적으로 개인과 정당, 또는 당파의 이익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이익,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한 싸움이어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 권력의 존재 이유가 바로 공동체 전체의 이익,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정치가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편협한 사적 또는 당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길거리 싸움'으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정치권 전체에서 나라가 망하건 말건 국민 전체의 삶이 피폐해지건 말건 고려치 않고 특정한 개인과 당파의 사적 이익을 위해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동원하여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물론 정치가 기본적으로 싸움이기 때문에 올바른 정책 방향을 두고 벌이는 정치 세력 간 논쟁과 갈등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과정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가 이러한 '공익을 위한 싸움'으로서의 성격을 잃고 특정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사적 이익을 위한 싸움으로 변하게 되면 조직 폭력배의 '길거리 싸움'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최근 여당 내에서 당권을 두고 소위 '친윤'과 '비윤'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다. 몇 달 전 '품위유지 위반'을 이유로 이준석 대표의 당원권을 정지하고 사실상 당대표에서 '축출'하는 장면도 그렇고, 당대표 경선에서 당원 투표 비율을 갑작스럽게 70%에서 100%로 바꾼 당헌 개정 장면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나경원 부위원장을 '해임'하는 장면을 보며 이러한 일련의 모습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모르겠다. 당사자들 말로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고 하는데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기에 이러한 모습은 조직 폭력배의 '길거리 싸움'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정치가 조직 폭력배의 길거리 싸움과 다른 점은 싸움의 목적이 특정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사적 이익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공공 이익을 위한 싸움이라는 점이다. 여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이 점을 명심하고 이번 전당대회를 개인 또는 정파의 사적 이익을 위한 싸움의 장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치열한 정책 논쟁의 장으로 만들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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