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일, 일본 나고야 인근에 개장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화들을 그대로 재현
지난 10일부터 외국인 전용 티켓 창구 열려
지브리 애니메이션 등장인물이 돼 작품 속 공간을 걷는 느낌이 이런 걸까. 2차원 속 평면도가 아닌 3차원 현실 속 공간에 재현된 '이웃집 토토로'의 사츠키와 메이의 집에 들어서고, '귀를 기울이면'의 골동품 가게를 찾아가다 보니 언제라도 주인공들이 툭 튀어나와 인사를 건넬 것만 같았다.
지난 12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인근 나가쿠테시 엑스포기념공원에 조성된 지브리 파크를 찾았다. 지난해 11월 1일 개장한 지브리 파크는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설립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 속 장소, 건물, 캐릭터 등을 현실세계에 구현한 공간으로 2017년 6월 사업 계획이 발표된 후 5년여 만인 지난해 11월 1일 완공돼 일반에 공개됐다.
지브리 파크 조성을 주도한 하야오 감독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일반 공개에 앞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편 영화 은퇴 선언이 지브리 파크 설립의 계기가 됐는데 아직까지 아버지가 은퇴를 하지 않고 있다"고 농담 섞인 설명을 내놓았다. 하야오 감독은 지난 1997년, 2013년 두 차례 은퇴를 선언했으나 다시 현업에 복귀해 신작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7월 14일 공개할 예정이다.
지브리 파크는 축구장 10개 규모인 71,000㎡의 거대한 부지에 총 5개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테마마크지만 놀이기구는 없다. 개장일에 맞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루 밑 아리에티’, ‘천공의 성 라퓨타’, ‘벼랑 위의 포뇨’ 등을 재현한 지브리 대창고, ‘귀를 기울이면’, ‘고양이의 보은’을 토대로 꾸민 청춘의 언덕, ‘이웃집 토토로’ 속 공간을 옮긴 돈도코 숲 3곳을 먼저 공개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거대한 시계탑을 통과해 지브리 파크에 입장하면 맞은 편에 있는 지브리 대창고에 이르게 된다. 지브리의 작품들을 한 공간에 모은 곳으로 입구 초입부터 가오나시를 시작으로 시타, 포뇨 등 지브리의 인기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다. 방문객들은 자신의 최애 캐릭터와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영화 속 '먹방' 장면은 지브리 팬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데 지브리 대창고에는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소개하는 기획 전시실도 있고 영화 '바람이 분다'에 등장하는 '시베리아' 카스테라 빵도 판매하고 있어 방문객들의 눈과 입 모두를 즐겁게 한다. 이곳에서만 관람할 수 있는 하야오 감독의 16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구지라토리’를 볼 수 있다. '고래잡이'라는 뜻의 제목이다.
'이웃집 토토로'를 배경으로 한 돈도코 숲에서는 주인공 사츠키와 메이의 집을 방문할 수 있다. 두 자매가 뛰어 놀던 거실, 아버지의 서재 그리고 이들이 함께 한 부엌이나 목욕실까지 사소한 부분까지 재현해냈다. '돈도코'는 두 자매가 토토로에게 받은 씨앗을 심고 나무가 자라길 바라며 토토로와 함께 춘 춤을 의미한다. 사츠키와 메이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이 돈도코 춤을 춘 장소가 있다. 하지만 많은 관람객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는 듯했다. 짧은 다리만 건너면 사츠키와 메이의 집을 배경으로 '이웃집 토토로'의 명장면과 같은 그림을 화면에 담을 수 있다.
영화 '귀를 기울이면'과 '고양이의 보은'을 모티브로 만든 청춘의 언덕은 작지만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하다. 테마 입구에 들어서면 조그만 집이 눈길을 끈다. 조심히 다가가 창문을 열면 '고양이의 보은'의 바론과 무타의 공간이 등장한다. 청춘의 언덕 본건물에는 '귀를 기울이면'에 등장하는 골동품 가게와 공방이 들어서 있다. 서랍장 하나 하나에 가득 찬 골동품을 보며 지브리의 섬세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지하에 있는 공방에서는 직접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테마인 모노노케의 마을과 마녀의 계곡은 각각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열릴 예정이다. 특히 마녀의 계곡은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마녀 배달부 키키'의 신비로운 모습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 거대한 마법의 성의 실물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팬들의 기대가 크다.
지브리 파크가 계승하려고 했던 것은 단순히 영화 장면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 자연으로의 회귀 등 자연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주요 키워드다. 아들 고로 감독은 설계 과정에서부터 이를 반영했다. 지브리 파크가 세워진 엑스포기념공원은 2005년 '자연의 지혜'가 주제였던 사랑·지구 박람회가 개최된 공원이다.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는 "사랑, 생명, 지구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으로 지브리와 멋지게 맞닿는다"고 설명했다.
지브리 파크는 최대한 공원의 자연 상태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조성됐으나 불가피한 경우 나무를 베지 않고 모두 다른 곳에 이식했다. 이러한 노력은 '이웃집 토토로'를 배경으로 한 돈도코 숲에서 느낄 수 있다. 지브리 창고에서 돈도코 숲으로 향하는 1㎞가 넘는 길은 울창한 나무들과 드넓은 호수로 장관을 연출한다. 또 메이와 사츠키의 집에서 조금만 산길에 오르면 거대한 토토로를 만날 수 있는데, 마치 메이나 사츠키가 숲을 지나 토토로를 찾아가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지브리 파크는 2001년 도쿄 미타카시에 개장한 지브리 미술관에 이어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모티브로 한 두 번째 관광지다. 이번 지브리 파크는 지브리 미술관과 전혀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지브리 미술관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업 공간과 영화의 제작 과정을 보이는 데 집중한 데다 규모도 작아 지브리의 많은 작품들을 담기에 부족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점도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지브리 파크는 우선 규모 면에서 지브리 미술관을 압도한다. 지브리 대창고만 하더라도 지브리 미술관의 약 3배 규모를 자랑한다. 기자가 지브리 파크에 오전 10시에 방문해 3개의 테마를 모두 돌아보는 데 6시간 넘게 소요됐을 정도다. 한 시간에 두 번씩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잘 이용해야 체력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사진 촬영이 가능한 점도 미술관에서의 아쉬움을 달랠 만하다. 지브리 파크는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촬영이 가능하다.
관람을 넘어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시베리아' 빵을 먹어보고 '귀를 기울이면'의 세이지처럼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으며, 사츠키와 메이의 집에서 서랍장을 하나씩 열어보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볼 수 있다. 자유로운 관람 환경에 지브리 파크에는 신이 난 어린 아이들과 유년시절로 돌아간 어른들로 가득했다.
해외 지브리 팬들의 높은 관심에 비해 지브리 파크의 접근성은 그리 좋지 않았다. 현지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어야 예약 사이트 회원 가입이 가능한 데다 개장 초기에는 선착순이 아닌 추첨제로 판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일부터 외국인 전용 온라인 티켓 창구를 열어 예약의 불편함을 해소했고 추첨제도 선착순 판매로 변경했다. 최근 국내 여행사에서 호텔 숙박권과 결합한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지브리 파크는 나고야 시내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관람은 100% 예약제로 운영된다. 지브리 파크를 방문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할 부분은 세 테마의 입장 시간이다. 각 테마마다 티켓을 별도로 구매해야 하는데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다. 지브리 대창고와 청춘의 언덕과는 달리 돈도코 숲은 도보로 약 20분 정도 떨어져있다. 가장 메인 테마인 지브리 대창고는 규모가 큰 만큼 충분한 관람 시간을 확보해야 아쉽지 않게 관람을 즐길 수 있다.
지브리 파크 측은 완전 개장 후 매년 180만여 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연간 약 480억 엔(약 4,600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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