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없는 답례품에 기부 의지 꺾여
쌀만 '달랑'... 수입 수산물까지 있어
정부 "상품 지자체 권한" 책임 미뤄
#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백모(37)씨는 최근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물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제외한 지방자치단체에 기부를 하면 세액공제와 함께 답례품(지역특산품)으로 교환 가능한 포인트(최대 30%)를 지급받을 수 있었다. 그는 설 명절을 앞두고 기부도 하고 특산품도 챙길 겸 서둘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하지만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뀌었다. 고향인 부산 중구의 답례품은 4,900원 상당의 ‘부산영화체험박물관 입장권’ 딱 하나였다. 지역 특색은커녕 쓰임새도 적은 제품이었다. 백씨는 18일 “성의 없는 답례품 목록을 보는 순간 기부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혀를 찼다.
홍보만 적극, 내용은 부실투성이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홍보에 열을 올리는 등 정부가 올해부터 의욕적으로 시행한 고향사랑기부제가 부실한 내용물로 외면받고 있다. 윤 대통령 부부는 12일 서울을 제외한 16개 시ㆍ도에 각 30만 원씩 기부했다. 국가균형발전을 중시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대통령실의 배경 설명이 뒤따랐고, 국회의원과 광역자치단체장 등 정치인들도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그러나 정작 기부제를 이용한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상당수 지자체가 쌀과 농산물 세트, 방향제 등 지역 특성과 무관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만 제시하고 있어서다. 답례품이 하나뿐이라 선택지가 아예 없는 곳도 있다.
인천 강화군은 강화섬쌀을 양과 가격만 달리해 올렸고, 부산은 노르웨이산 고등어로 가공된 ‘고갈비’를 버젓이 답례품 목록에 포함시켰다. 지역 온라인몰에서만 사용 가능한 상품권을 등록해 놓은 지자체도 부지기수다. 열악한 지방재정을 확충하고 지역균형 발전을 촉진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무성의한 지자체들의 행태는 시민들의 기부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다. 전북 전주가 고향인 박모(34)씨는 “닭날개 볶음밥이 밀키트(간편조리식)로 선정됐는데, 전주가 자랑하는 비빔밥 같은 상품을 내놨으면 바로 기부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광주광역시 출신 양모(35)씨도 “출장세차 서비스 답례품은 광주에서 세차 받고 다시 서울로 가라는 얘긴지 황당할 따름”이라며 “이런 식이면 고향에 기여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독창적 상품 개발이 성패 갈라"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시행 초기라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부실 운영을 인정했다. 다만 답례품 선정은 자체 조례로 정하는 지자체의 권한이라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고 책임을 미뤘다. 행안부는 앞서 기부금 사용 목적이 모호해 기부제가 활기를 띠지 못한다는 보도(▶관련기사: 고향사랑기부제 홍보 열 올리는데… 사용 목적 명시한 곳은 없어)가 나온 뒤에도 “올해 제도가 처음 시행돼 답례품 선정위원회 구성 및 선정, 답례품 시스템 등록 등에 역량을 집중해왔다”고 해명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자체 간 건전한 경쟁이 활성화하면 특색 있는 상품이 마련될 것”이라며 낙관적 견해를 내놨다.
하지만 고향사랑기부제가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선 지자체 스스로의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기부를 유도할 독창적 상품 개발에 힘을 쏟지 않을 경우 시민들의 관심은 계속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균형 발전 전문가인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창의적 해법이 마련되면 상당한 예산을 기부제로 충당할 수 있을 텐데 제도 운용에 대한 지차제들의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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