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자기 주장만 펼치는 시대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찰력’(인사이트)이 아닌 ‘기존 틀을 깨는 새로운 관점’(아웃사이트)이 필요합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격주로 여러 현안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고정관념을 넘은 새로운 관점의 글쓰기에 나섭니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3ㆍ8 전당대회를 앞두고 현재 국민의힘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나경원 사태’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었다.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신년 간담회에서 나 전 의원은 헝가리의 파격적인 저출산 대책을 한국에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정책 개요는 결혼하면 4,000만원을 대출해주고, 첫 자녀 출산 시 무이자 전환, 둘째ㆍ셋째 출산 시 원금 일부 또는 전액을 탕감해주는 내용이다. 나 전 의원의 저출산 대책 그 자체는 대단한 게 아니었다. 한국 정치권에서 저출산과 관련된 파격적인 인센티브 필요성은 종종 제기된다.
문제는 나 전 의원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반박을 하면서 사건이 커지기 시작한다. 대통령실의 공개 반박, 나 전 의원의 유감 표명, 나 전 의원의 숨고르기 모드, 다시 나 전 의원의 활동 재개, 대통령실의 공개 반박, 다시 나 전 의원의 유감 표명, 나 전 의원의 활동재개… 최근 몇 주간 반복되고 있는 패턴이다.
2016년 ‘진박(眞朴) 감별’의 추억
왜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의 파격적인 저출산 대책에 대해 공개 반박을 했을까? 그 이유는 3ㆍ8 전당대회와 관련이 있다. 윤 대통령과 가깝다고 알려진 소위 윤핵관들(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은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을 당대표로 밀고 있다. 김 의원은 윤핵관으로 알려진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과 연대하고 있다. 이를 ‘김ㆍ장 연대’라고 표현한다.
그간 국민의힘의 당대표 선출방식은 여론조사 30%, 당원 투표 70%였다. 여론조사에서 1위로 나오는 사람은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윤핵관은 행여나 유 전 의원이 대표로 당선될까 봐 걱정되어 여론조사 30%를 없앴다. 100% 당원투표로 바꿔 버렸다. 유 전 의원의 당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낮추기 위해서였다. 전체 여론조사 1위는 유 전 의원이었지만, 당원 여론조사 1위는 나 전 의원이었다. 나 전 의원은 윤핵관들이 ‘밀고 있는’ 당대표 후보가 아니었다.
윤핵관들 입장에서 나 전 의원이 당대표로 출마하게 되면, 자신들의 계획이 어그러질 가능성이 높다. 윤핵관들은 나 전 의원의 출마를 원천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줬을 것이다. 이를테면 출마 저지용 직책이었다. 그런데, 당대표로 나올 조짐이 뚜렷해지고, 게다가 저출산을 핑계로 ‘언론 플레이’까지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윤핵관들이 보기에는, 하나같이 ‘매우 괘씸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실에서 나 전 의원의 언행을 하나하나 공개 반박하는 이유다.
당대표는 2023년 총선의 공천권과 직결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처음에는 당대표에 나가려면 부위원장을 사퇴하고 나가라고 했다. 이에 나 전 의원이 사직서를 제출하자 ‘받은 적 없다고’ 모른 척했다. 나 전 의원은 다시 서면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통령실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사직서 수리가 아니라, ‘해임’을 통보했다. 윤핵관들 입장에서, 나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하는 행동들을 보면 참으로 좁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경원 사태’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2016년 총선 직전에 있었던 ‘진박(眞朴) 감별’의 추억을 떠올린다. 당시 친박근혜 의원들은 누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진실되게 충성하는 사람인지” 감별하겠다고 나섰다. ‘진박 감별사’를 자임하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나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 여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윤핵관들이 이제 나 전 의원의 ‘사법적 약점’을 공격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치인’ 나 전 의원 입장에서 보면, 일련의 상황들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주목받는 것’이다. 오죽하면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중적인 관심 에너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나 전 의원은 2020년 총선이 있을 때, 당 지도부였다. 당시 대표는 황교안 전 총리, 원내대표는 나 전 의원이었다. 황교안ㆍ나경원의 투톱 체제는 ‘탄핵을 반대한’ 보수를 상징했다. 2020년 총선 역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자기장(磁氣場)이 영향을 미쳤던 선거다. 황교안ㆍ나경원 투톱 체제는 ‘개혁성향 보수’와 거리가 멀었다. 실제로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참패했다.
나 전 의원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해서 ‘마침내’ 당대표가 된다면, 차기 대선 후보급으로 정치적 중량감이 커지게 될 것이다. 반대로, 윤핵관들의 협박에 쫄아서 대표 출마를 포기할 경우 ‘대선후보급’으로 체급을 올리는 기회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2016년 보수의 분열은 ‘4가지 사건’의 결합
2015년부터 2022년 대선 직전까지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보수의 분열’이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이 기간은 ‘정치적 전성시대’였다. 민주당은 이 기간에 연전연승을 한다. 2016년 총선 승리, 2017년 3월 대통령 탄핵,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2018년 지방선거 압승, 2020년 총선 압승이다. 보수의 분열로 생긴 '역사적인, 기회의 창'이었지만 민주당은 국민들이 자신들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됐다. 소득주도성장 논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 검찰개혁 논란, 부동산 정책 논란 등으로 이 기회를 소진하면서 결국 정권을 넘겨줬다.
2016년 총선은 ‘보수의 분열’이 시작된 분기점이다. 2016년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는 ‘진박(眞朴) 감별’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야를 조금 더 확대해서 볼 필요가 있다. 2015년 여름부터 2016년 총선 기간까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서는 크게 3가지 사건이 벌어진다. 첫째는 2015년 여름에 있었던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 찍어내기’. 둘째, 2015년 가을에 있었던 ‘국정 교과서’ 추진이었다. 셋째 2016년 연초에 있었던 ‘진박 감별’ 논란, 넷째 김무성의 ‘옥새 파동’이었다. ①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 ②국정교과서 추진 ③진박 감별 ④김무성 옥새 파동의 4가지 사건은 하나의 정치적 사건으로 귀결됐다. 바로 ‘보수의 분열’이었다.
특히 지역 측면에서 보수 내에서 부울경(부산ㆍ울산ㆍ경남)과 대구ㆍ경북 간 균열이 도드라졌다. 역사를 거슬러 가면 1990년 3당 합당 전 부울경은 부마 항쟁의 전통이 있던 지역이다. 1987년에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 이후 “종철이를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부산은 1987년 6월 항쟁의 한 축이었다. 정치적으로는 김영삼 대통령을 지지했다. 다른 한편으로 부산ㆍ경남 지역은 박정희 대통령 이후 현재까지 한국경제의 거점이었다. 한국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중화학공업 기반의 대기업ㆍ수출ㆍ제조업 경제다. 부산ㆍ울산ㆍ경남은 ‘박정희식 경제성장’의 지리적, 역사적 거점이다.
이러한 역사적 특징으로 인해 부산ㆍ경남 지역은 권위주의에 비판적이다. 동시에 대기업ㆍ수출ㆍ제조업 중심의 한국경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민주주의도 중시하고 경제도 중시한다. 한국 정치에서 흔히 쓰는 분류법에 의하면, ‘개혁성향의 보수’ 전통이 강한 곳이다.
2015년 여름부터 2016년 연초까지 전개된 ①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 ②국정교과서 추진 ③진박 감별 ④김무성 옥새 파동의 4가지 사건은 2016년 총선 결과를 바꿔놓는다. 부산ㆍ경남 지역에 한정해서, 2012년 총선과 2016년 총선 결과를 비교해보자.
부산ㆍ경남의 총 의석수는 34석이다. 2012년 총선에서, 당시 새누리당은 총 30명(88.2%)이 당선됐다. 2016년 총선에서는 총 24명(70.5%)이 당선됐다. 2012년 총선과 비교하면 2016년에는 17.7%포인트가 줄어들었다. 2012년 총선에서 당선자가 3명(8.8%)이었던 민주당은 2016년 총선에서는 8명(23.5%)으로 늘었다. 창원 성산구에서 당선된 노회찬 전 의원(정의당)을 포함하면, 민주당과 정의당의 합계는 26.4%(9명)였다. 2012년과 2016년을 비교하면 17.6%포인트가 늘어났다. 부산ㆍ경남을 기준으로 국민의힘은 30명에서 24명으로 줄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3명에서 9명으로 늘었다. 한쪽은 6명이 줄고, 다른 한쪽은 6명이 늘었다. 실제 변동폭은 12석이 된다. '진박 감별'이 부울경 일각의 이탈을 불렀던 것이다.
윤핵관은 ‘진박 감별의 추억’을 재현할 것인가? 한국 정치는 ‘과거’ 아니라 ‘미래’로 나가야 한다. 오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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