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대신 창고行, 쌀의 몰락]
수요 무관 음용유 단일가 체계 '끝'
가공유는 더 싸게 공급, 요구 수용
갈수록 한국인이 덜 찾는 음식이 밥뿐은 아니다. 흰 우유 사정도 예전만 못하다. 그래서 쌀 농가와 낙농가는 동병상련 처지다. 설상가상 값싼 수입산의 공세까지 매섭다. 원유(原乳) 공급 가격을 좀 내리자는 정부 제안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낙농가가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올 들어 적용되기 시작한 원유 가격 결정 방식은 10년 만에 바뀐 것이다. 마시는 음용유와 버터나 치즈 등 유가공품 제조에 쓰이는 가공유로 원유를 나누고 각기 다른 가격을 정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다. 음용유는 가격에 소비시장 상황이 반영되고, 가공유 가격 결정에는 수입산 가격이 고려된다. 음용유는 과잉 생산 정도가 심각할 때, 가공유는 국제 경쟁 가격보다 지나치게 비쌀 때 협상 과정에서 가격 인하가 고려될 수 있다.
2013년 도입돼 지난해까지 유지된 가격 결정 체계는 단순한 구조였다. 음용유 하나였고, 낙농가가 생산에 투입한 비용만 가격에 반영됐다. 그래서 ‘생산비 연동제’다. 시장 수요는 변수가 아니었다. 우유 소비량이 줄든 말든 생산비가 전년보다 더 많이 들었다면 가격은 올랐다.
초기인 만큼 당장 변화가 심하지는 않다. 리터(L)당 가격이 가공유(800원)가 음용유(996원)보다 대폭 싸게 책정되기는 했지만, 판매되는 양(10만 톤) 자체가 음용유(195만 톤)보다 훨씬 적다. 이원화됐다고는 해도 종전 음용유 단일가 체계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은 모습이다. 가격에 미치는 수요와 경쟁의 영향도 아직 가능성일 뿐이다. 하지만 여지만으로도 낙농가는 찜찜하다.
물론 낙농가가 흔쾌하지는 않았다. 다른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쪼그라든 음용유 수요의 영향이 가장 컸다. 저출생 흐름에 취향의 이동, 대체품 등장까지 포개지며 2001년 36.5㎏이던 1인당 소비가 20년 새 32.0㎏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가공품까지 포함한 전체 유제품으로 범위를 넓히면 같은 기간 소비가 63.9㎏에서 86.1㎏으로 증가한 것이다.
문제는 경직성이다. 낙농가의 생산은 음용유 일변도였고, 유업체는 비싼 국산 음용유 대신 저렴한 수입산으로 유가공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국산 원유는 급속히 입지를 잃어 갔다. 2001년부터 20년 만에 77.3%에서 45.7%로 떨어진 국산 우유 자급률은 정부의 골칫거리가 됐다.
게다가 하필 지난해가 낙농가에 유난한 곤경이었다. 2021년 사료 가격이 전년보다 9.7%나 폭등하며 채산성 악화로 폐업한 목장이 같은 기간 67%나 늘었다.
그간 낙농가는 정부의 보호를 받을 만했다. 목장의 노동 강도는 유형을 막론하고 농가 중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우유 가격이 오를 때 비난 대상은 주로 낙농가였다. 시장과 괴리된 가격을 받아 챙기며 우유 소비자에 피해를 입혀 왔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낙농가에도 바야흐로 고비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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