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소멸국을 가다 ② 피지
데브라 사드라누 에센스그룹 피지 대표이사 인터뷰
편집자주
기후전쟁의 최전선에 태평양 섬나라들이 있습니다. 해발 고도가 1~3m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들은 지구 온난화로 생존을 위협받습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해변 침식과 해수 범람이 삶의 터전을 빼앗은지 오래입니다.
태평양 섬나라 14개국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1%가 안 됩니다. 책임 없는 이들이 가장 먼저,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부정의이자 불공정입니다.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에 당신의 책임은 없을까요? 한국일보는 키리바시와 피지를 찾아 기후재난의 실상을 확인하고 우리의 역할을 고민해 봤습니다.
"피지 여성을 많이 고용해 재정적 독립을 돕는 게 제 사업의 최우선 목표예요. 피지의 환경을 되살려야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겠죠. 이게 바로 지속가능한 경영 아닐까요?"
5일(현지시간) 피지 비티레부 섬에서 만난 데브라 사드라누 에센스그룹 피지 대표이사의 말이다. 호주 출신인 그는 피지 관광업계의 거물이다. 1998년 피지 최초의 스파 학교를 세워 스파 문화를 유행시켰다. 2014년엔 아열대 해조류인 바다포도로 만든 화장품과 조미료 사업을 시작했다. 공직도 맡고 있다.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2020년 인구 규모로 최대 도시인 비티레부 섬 북서쪽 바와 라우토카의 시의원에 임명됐다.
사드라누의 말은 두 가지 키워드로 압축됐다. '여성'과 '친환경.
지역사회·환경·여성 고용 잡는 바다포도
피지 화장품엔 열대과일 성분이 들어가는 게 보통이었다. 생소한 바다포도에 눈을 돌린 건 왜일까. 2010년대 초반 바다가 달궈지면서 이상증식한 해조류가 비티레부 섬 서안을 뒤덮었다. 썩는 냄새 때문에 인근 마을과 리조트의 고충이 컸다. 해조류 처리 방법을 고민하던 사드라누는 해조류가 탄소를 포집해 지구 온난화를 늦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해조류가 광합성으로 생성한 산소를 바다에 배출하면 해양 생태계 복원에도 기여한다"며 "피지의 토착 수산물인 '나마' 바다포도는 구하기도 쉬우니 대량 재배해 뭔가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얕은 바다에서 자라 여성들이 키우기 쉽다는 점도 바다포도를 선택한 이유였다. 사드라누의 말. "개발이 안 된 외딴 섬에서 할 수 있는 경제 활동은 어업뿐이라 여성들의 돈벌이가 거의 없다. 어업은 남성의 신체조건에 더 유리하니 어쩔 수 없다. 피지 여성들은 남편이 쓰고 남은 돈으로 아이를 기를 정도로 열악하게 산다. 바다포도를 키워 안정적인 수입이 확보되면 여성 지위 향상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사드라누는 비티레부 섬 북서쪽 야사와 섬의 작은 마을 소모소모, 구누와 바다포도 재배 계약을 맺었다. 지금도 두 마을에서 바다포도를 공급받고 있다.
한국에선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일찌감치 시작한 것이다. "무분별한 관광 개발로 산호 백화현상과 바다 오염이 심했다. 그때 알았다. 피지 관광업계는 자연에 의지하는구나, 자연이 파괴되면 관광도 없구나."
스파 사업의 목표는 비티레부 섬 여성들의 고용 촉진이었다. "스파는 나이가 많든 적든 기술만 배우면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드라누의 스파 학교에선 매년 약 50명이 졸업한다. 대부분 여학생으로, 피지 전역 리조트와 호텔에 취업한다.
기후재난·팬데믹 이중고 닥쳤지만…
사드라누는 시의원 활동을 하면서 기후재난을 절절히 깨달았다. 시의원 임기를 시작한 2020년 사이클론(강한 회오리바람을 동반하는 열대성 돌풍) 해럴드와 야사가 비티레부 섬에 연달아 닥쳤다. 사드라누의 관할 지역도 침수 피해가 심각했다. 나무와 슬레이트로 지은 주택은 금방 무너졌다. 그는 "피지에 처음 왔던 1990년대랑 비교하면 기후변화가 갈수록 심해진다"고 우려했다.
변하지 않는 건 피지 사람들의 회복력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쳐 절망할 거라 생각했지만, 주민들은 서로를 다독였다. 장을 볼 돈이 떨어지면 벼룩시장을 열어 필요한 물건을 나눠 썼다. "사회적 관계망이 피지인들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타고난 낙천성의 힘도 컸다. 기후재난의 그림자가 짙어지지만, 피지인들은 위기를 반드시 극복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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