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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뭐해?"…장애인·여성 '공간 침입자'를 향한 눈초리

입력
2023.02.03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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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멀 퓨워 '공간 침입자'

편집자주

차별과 갈등을 넘어 존중과 공존을 말하는 시대가 됐지만, 실천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모색한다, 공존’은 다름에 대한 격려의 길잡이가 돼 줄 책을 소개합니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지난달 18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사이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서울시는 단체의 면담 제안을 이날 사실상 거부했다. 뉴스1

지난달 18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사이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서울시는 단체의 면담 제안을 이날 사실상 거부했다. 뉴스1

요사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운동이 연일 공론장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동권이라는 말이 처음 화제가 된 것은 명절이었다.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는 표어를 걸고 시외버스 정류장과 기차역 등에서 선전전을 벌였다. 몇 년간의 노력 끝에 2018년 휠체어리프트가 장착된 시외버스가 개발되었고, 서울을 출발하여 전주, 부산, 당진, 강릉 4개 노선의 10대 차량을 운행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금은 고속버스 2대를 운영할 뿐, 시외버스 노선은 단 한 대도 운행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최근 서울시는 전장연 시위에 벌금을 청구하거나 무정차로 대응하는 등 이동권 투쟁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교통약자를 위해 존재하는 대중교통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탑승하게 해달라 요구하는 것은 왜 불법이 될까?

영국의 사회학자 너멀 퓨워는 저서 '공간 침입자'에서 규범적 신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그동안 거의 차지하지 않던 공간에 나타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본다. 제국의 역사를 가진 영국을 대상으로 한 그의 연구는 암묵적 인종·젠더 차별을 공간과 연결시켜 사유한다. 국가나 관료조직 등의 고위직은 젠더화되고 인종화된 상징성을 갖는다.

여성, 비백인과 같은 ‘공간 침입자’들은 국회, 군대 등을 위협하고 기존 점유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공간과 신체 사이의 연결은 특정 공간에 다른 신체가 나타나는 것을 침입으로 느끼게 한다. 새로운 신체들이 전문직에 진입하면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고, 괴물 같은 존재로 각인된다. 1950년대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에 도착한 정신의학자 프란츠 파농은 지나가는 어린 소녀로부터 “검둥이 좀 봐, 검둥이야”라는 외침을 들었다. 소녀는 파농을 보며 진심으로 두려워했다.

공간 침입자·너멀 퓨워 지음·김미덕 옮김·현실문화 발행·296쪽·1만8,000원

공간 침입자·너멀 퓨워 지음·김미덕 옮김·현실문화 발행·296쪽·1만8,000원

공간 침입자의 출현은 누가 규범적 신체인지를 보여준다. 퓨워는 흑인이나 여성이 고위직에 진출한 경우 "여기서 당신은 무얼 하나요?"라고 묻는 눈초리를 받는다고 지적한다. 백인-남성 의원은 국회에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질문을 받지 않는다. 젠더나 인종과 무관한 신체는 눈에 띄지 않고 바로 정상으로 보이는 특권을 갖는다. 백인성은 피부색의 부재로, 남성성은 젠더의 부재로 정의된다. 비백인이나 비남성의 존재는 언제나 셈해지고 수치화된다. 국회의원 다수는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두 명이나’ 있다고 과장된 평가를 받는다. 인종, 젠더를 대표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 개인의 실수나 잘못이 인종 전체, 성별 전체로 확장된다. "거봐 아시안은 믿을 수 없다니깐."

공간 침입자들은 주류가 원하는 신체적 규범에 따라 부드럽게 말할 것을 요구받는다. 여성은 국방이나 안보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보건, 가족 등의 이슈에만 관여해야 한다. 이주자는 도착국가의 언어를 완벽하게 익혀야 하고, 순종적인 태도를 갖춰야 한다. 여성에게는 상냥하고 친절한, 애교 섞인 말투가 요구된다. 소수자가 규범적 언어를 이탈하면 강한 비난이 쏟아진다.

지난해 8월 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종로구 5호선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 등을 요구하며 '제34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8월 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종로구 5호선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 등을 요구하며 '제34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시민의 출근을 방해하는 약탈적 소수자로 정의된 전장연에는 혐오발언과 욕설이 쏟아진다. 전장연의 시위는 ‘힘없는 약자’라는 신체적 규범을 벗어난다. 이들은 출근 시간에 지하철 승강장에 나와 지하철에 탑승하려 시도한다. 비장애인을 기본으로 설정된 ‘출근하는 시민’의 규범적 신체로부터 벗어난 이들로 인해 지하철 탑승이 지연된다. 승차를 막는 경찰과 직원들로 인해 고성과 몸싸움이 벌어진다. 여기서 또 시간이 지체된다. 지하철에 타려고 한다는 이유로, 전장연은 허락받지 않은 공간에 침입한 자들이 된다. 규범을 지키지 않는 소수자는 비난받아 마땅한 자가 된다.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려고 할 때 발생하는 지연은 한국 지하철의 구조적 문제이지 지하철에 타려고 하는 사람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장연 시위 덕택에 각 지하철에 설치되기 시작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등 교통약자를 위한 시설을 노인, 임산부, 어린이, 짐 든 사람 등 비장애인들 역시 일상적으로 이용한다. 이동권 보장은 특정한 그룹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하철과 기차역, 시외버스 터미널은 침입당한 공간이 아니라 본래 열려 있어야 할 공간이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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