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마지막 날 갑자기 들이닥친 맹추위로 전국이 움츠러들었다. 겨울 한파로 한참 고생할 때면 이 정도 추위는 추위도 아니라는 듯 언론은 지구촌 어딘가에서 혹한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겨울나기를 전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인 러시아 야쿠츠크는 영하 50도 안팎의 혹한이 이어지는데도 화면 속 주민들은 익숙하다는 듯 일상을 보내고 있다. 추위를 극복하는 방법도 양배추처럼 겹겹이 껴입으면 된다고 무심하게 대답한다.
최근 30년간 우리나라는 평균 기온이 오르면서 봄과 여름은 길어지고 가을과 겨울은 짧아졌다. 그러나 봄, 가을과 달리 겨울은 여름만큼이나 여전히 길게 느껴진다. '살을 에는', '뼛속으로 스며드는', '온몸을 할퀴는' 추위를 견뎌야 하는 겨울은 사람이 살기에 힘겨운 계절이다. 겨울의 '추위'만큼이나 여름의 '더위'도 인간에게는 힘겨운 환경이기 때문인지 두 단어는 호응하는 서술어 등 비슷한 언어적 특성이 많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다가' '맞서서' '이겨내면' 어느덧 더위와 추위는 '한풀 꺾여' '수그러들고' '물러간다'. 물론 불과 얼음처럼 기후의 특성상 추위에는 떨지만 더위에는 헐떡이고, 추위는 녹이지만 더위는 식힌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 중에 '고추바람, 매운바람'이 있다. 보통 영어에서는 '맵다(hot)'가 뜨겁다는 뜻으로 여름 날씨에 쓰이는데, 한국어에서는 더위가 아닌 극심한 겨울 추위와 연결된 것이다. 칼바람을 맞는 고통을 매운맛으로 표현하는 한국어만의 특성이라 할 수 있겠다. 매운 한파를 견디며 죽어 있는 듯한 자연의 겨울나기는 그 속에 새 생명을 품고 있다. 인생의 고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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