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한 상황 판단, 매뉴얼 무시, 정보 공유 실패... 총체적 부실임에도 군 당국은 꼬리 자르기에 급급했다. 북한 무인기가 지난달 26일 우리 영공에 침입해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니며 방공망을 유린했지만 군 지휘부는 "위협 인식이 다소 부족했다”며 면피에 그쳤다. 그러면서 북한 무인기에 대처하기 힘든 현실적 제약만을 강조했다. 되레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손을 벌렸다.
고속상황전파체계 먹통... 1군단-수방사 정보 연동도 안 돼
합동참모본부는 2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무인기 사건 전비태세 검열결과를 보고했다. 대응작전의 시작인 탐지단계부터 헛돌았다. 합참은 "긴급상황을 전 부대에 알리는 ‘고속상황전파체계’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방공부대 전파망인 ‘고속지령대’를 통한 상황 공유도 이뤄지지 않았다.
최전방 육군 1군단은 레이더로 무인기 항적을 포착했다. 방공지휘통제경보체계(C2A)를 통해 다른 군단·사단급 부대에 전파해야 하는 정보다. 하지만 1군단과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사이에 C2A 연결은 먹통이었다. 자연히 무인기가 1군단 관할구역을 지나 내려올 때까지 수방사는 알 수 없었다. 의심 항적에 대해서는 레이더가 아닌 육안이나 열상감시장비(TOD)로 직접 확인해야 하는데도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 합참은 “북한 무인기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왔을 때 우리 군부대 간 적극적인 상황 공유와 협조가 미흡했던 점이 검열을 통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용산 촬영 못했을 것" 변명 급급... 되레 '예산' 요구
합참은 변명에 급급했다. 이번 무인기가 2014년 백령도, 2017년 강원 인제군에 추락한 북한 무인기에 비해 성능이 향상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히면서도 "항적과 카메라 성능을 고려할 때 용산지역 촬영은 제한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군 통수권자가 위치한 대통령실에 대한 위협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증거인 북한 무인기를 포획하지 못한 만큼, 군의 설명을 곧이 믿기는 어렵다.
김승겸 합참의장은 "무인기를 포착했지만 대응사격의 사거리, 민간 피해 등을 우려해 공중과 지상 전력으로 타격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유사 상황이 재발할 경우 어떤 조건에서 타격이 가능한지는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전반적인 무인기 대응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작전시스템 △안티드론 통합체계 △기동형 드론 탐지 재밍시스템 △공중 타격전력 등 전력 증강을 거론하면서 결국 '예산'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이제껏 무인기에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합참은 "소형 무인기 대신 500MD 헬기를 띄워 훈련을 해왔다"고 밝혔다. 참새를 잡아야 하는데 표적은 비둘기나 독수리였던 셈이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野 "장관, 합참의장 물러나야"
초유의 안보 참사에 들끓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누가 책임질지는 불분명하다. 육군 지상작전사령관, 수방사령관, 1군단장, 공작사령관 등 고위급 가운데 누가 문책대상에 포함될지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 군 지휘부는 "검열 결과에 따라 신중하게 검토할 것(김 의장)", "신중하게 판단해 결론 내릴 것(이종섭 국방부 장관)"이라며 말을 아꼈다.
야당은 이 장관과 김 의장에게 화살을 겨눴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상황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은 심각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물러날 수 있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같은 당 윤후덕 의원이 '장관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 장관은 “도움이 된다면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한다”며 “무엇이 정말 우리 군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지휘부가 떠안지 않고 실무자에게 떠넘기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군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초기 상황을 긴급 상황이 아니라 수시보고 사항으로 판단했다”며 “1군단 전투정보상황실(CCC) 근무 영관급 실무자의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합참은 “기술적 한계로 초기 상황판단을 대부분 장비 운영자에 의존한다”고 해명했다.
유엔사 특조위 "남북 모두 정전협정 위반" 결론
주한유엔군사령부는 이번 사태를 놓고 "남북 모두가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유엔사는 이날 발표한 군사정전위원회 특별조사 결과에서 “다수의 북한군 무인기가 대한민국 영공을 침범한 행위가 북한군 측의 정전협정 위반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한국군 무인기가 비무장지대를 통과하여 북측 영공에 진입한 것은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국방부는 “유엔사가 본연의 임무인 정전협정 관리 측면에서 판단한 것으로 본다”며 “자위권 차원의 조치는 정전협정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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