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소멸국을 가다⑤ 기후위기의 해법
[인터뷰] 권원태 전 APEC기후센터 원장
"2040년 1.5도 상승 '기정사실'…안전지대 없어
악덕기업 불매하듯, 기후 대응에도 비용 필요"
편집자주
기후전쟁의 최전선에 태평양 섬나라들이 있습니다. 해발 고도가 1~3m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들은 지구 온난화로 생존을 위협받습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해변 침식과 해수 범람이 삶의 터전을 빼앗은 지 오래입니다.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에 당신의 책임은 없을까요? 한국일보는 키리바시와 피지를 찾아 기후재난의 실상을 확인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우리의 역할을 고민해 봤습니다.
“지금은 기후 비상사태예요.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닙니다.”
오로지 숫자로만 말하는 과학자가 이렇게까지 단호한 어조로 경고할 때는 새겨들어야 한다. “명백한 과학적 진실”이기 때문이다. 2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난 권원태 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기후센터 원장은 “기후변화가 급변점을 넘어서면 회복할 수 없다”며 “탄소중립은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권 전 원장은 평생을 기후변화 연구에 바친 기후·기상학 전문가다.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전 국립기상연구소)에서 지구·한반도 기후변화 연구를 주도했고, 기상청 기후과학국장, 국립기상연구소장, 한국기후변화학회장, APEC기후센터 원장을 지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4·5·6차 보고서에 주저자로 참여해 2007년에는 노벨평화상 기여인증서를 받았다. IPCC 보고서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등 정부 간 협상과 기후정책 설립에 근거자료로 활용된다.
최근 권 전 원장은 연구실 밖에서 강연과 토론을 활발히 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그는 “확실히 젊은 세대는 기후에 관심이 많다”며 “그나마 희망이 보여 다행”이라고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재난이 속출하고 있다.
“국토 3분의 1을 수몰시킨 파키스탄 대홍수와 유럽의 폭염·가뭄, 미국 서부 산불, 그리고 서울의 강남역 침수 사태까지, 전부 기후변화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극단적 기상현상이 더 잦아지고 강해지고 있어 걱정스럽다.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기후변화가 빨라진다는 것을 실감한다.”
-기후변화 대비를 잘한다는 기후 선진국도 난리다.
“2021년 여름 독일에서 폭우로 200명 가까이 숨졌다. 당시 24시간 동안 내린 비의 양은 겨우 150㎜였다. 여름철 월 평균 강수량이 300㎜가 넘는 한국에선 ‘비 좀 왔네’ 하는 수준이지만, 70~80㎜에 불과한 독일에선 재난이었다. 어느 나라든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현상’이 발생하면 기후변화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기후변화는 막을 수 없나.
“2021년 IPCC 6차 보고서는 지구 온도가 산업혁명 때보다 섭씨 1.1도 올랐고, 2040년까지 0.4도 더 올라 ‘마지노선’인 1.5도 상승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만으로 도출된 결과라 되돌릴 방법은 없다. 한마디로 ‘정해진 미래’다. 2040년 이후에는 1.5도를 넘어갈 가능성도 매우 크다.”
-1.5도는 어떤 의미인가.
“사람들은 ‘1.5도 안에서 막으면 안전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기온이 1.5도 오르면 폭염 발생은 8.6배, 가뭄은 2배, 폭우는 1.5배 증가한다. 그로 인한 피해는 천문학적이다. 지난해 포항제철소는 태풍 힌남노로 가동이 중단돼 2조 원대 손실을 입었다. 2018년 폭염 때는 농산물 가격이 치솟아 ‘삼겹살에 상추를 싸 먹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피해는 훨씬 증가할 것이다.”
-해수면 상승도 큰일이다.
“1900년부터 현재까지 해수면이 20㎝ 상승했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해도 2100년까지 최소 40㎝ 더 올라간다. 해발고도가 1~3m인 태평양 섬나라에는 ‘종말 선고’다. 안타깝지만, 이 또한 ‘정해진 미래’다. 해수면이 올라가면 연안 저지대에 홍수 피해가 커지고, 바닷물 범람으로 농사를 짓기 어려워진다. 사람들이 수몰을 피해 내륙으로 몰리면서 식수난, 식량난도 발생한다. 인구 과밀로 전염병 위험도 커진다. 기후학자들이 수십 년간 경고했던 기후변화 예측 시나리오인데, 이미 섬나라에선 일상이 됐다. 우리에게도 닥쳐 올 또 하나의 ‘정해진 미래’다.”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기후예측·조기경보 시스템만 잘 갖춰도 재해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해수 담수화 시설, 선진 농업기술 이전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일회성 사업으로 끝내지 말고, 후속 조치까지 마련해 기술을 숙련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기후취약국은 지구온난화 책임이 큰 선진국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태평양 섬나라가 배출한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 배출량의 0.03%가 안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르다는 게 기후위기 대응의 또 다른 난제다. 국가별 책임과 보상금 액수를 산출하기 위한 기준점을 잡는 일부터 쉽지 않을 것이다. 과학적 불확실성도 크다. 다만 ‘불편한 진실’을 환기해 선진국의 자발성을 이끌어낼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 해양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지구 표면 71%를 덮고 있는 바다는 기후시스템에서 초과된 열의 90%와 대기 중 이산화탄소 25%를 흡수한다. 온난화 속도를 늦추는 데 바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수심 0~2,000m 바다에 흡수된 열량이 얼마나 될까. 무려 11제타줄(ZJ·10의 21제곱 줄)이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1억2,000만 개와 맞먹는 열량이다. 문제는 열과 이산화탄소가 과다 축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현상이 발생하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바다는 산성화된다. 그러면 플랑크톤의 생육이 어려워지고 먹이사슬에 연쇄적 영향을 끼쳐 해양 생태계가 무너진다. 게다가 바다는 ‘지구의 온돌’과 같아서 한 번 데워지면 잘 식지 않는다. 수온이 오르면 바닷물 부피가 팽창해 해수면 상승 속도가 빨라진다. 또 미지근한 콜라에서 김이 빠지듯 이산화탄소 흡수율도 떨어진다. 탄소를 줄여야 바다가 살고, 바다가 살아야 탄소를 줄일 수 있다.”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나.
“올해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은 향후 10년간 지구적 위험 1위로 ‘기후변화 완화 실패’를 꼽았다. 충분히 행동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위기라니, 아이러니 아닌가. 기후위기에 대안은 없다. 단,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악덕 기업을 불매하듯, 기후 대응도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이다. 지난 대선에선 기후공약이 실종됐다. 기후정책을 중심에 둔 정치인을 투표로 뽑아서 국회와 지방자치단체로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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