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타는 딸은 외출할 때 꼭 이어폰을 낀다. 간혹 어깨를 치며 "휠체어 얼마야? 나라에서 지원해주니 좋지?"라며 시비 거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휠체어가 국가지원금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10배 비싸다는 걸 매번 설명할 수도 없는 법이다. 각종 보조기기, 자동차 개조 등 기본적 생활과 이동에 필요한 비용이 대부분 '본인부담'임을 설명하는 것도 입이 아프다. 시민의식이 바뀌어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9월 국민통합위원회 장애인이동편의증진특위 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유도 이것이다. 이동권은 단순히 어떤 교통수단을 늘리는 데 국한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한 10여 명이 매주 모여 지하철, 택시 등 대중교통, 교통종사자 인식, 시민의식까지 정말 치열한 논의를 거쳤다. 1월 30일 열린 최종보고서 발표회 때는 접근성 정보(동네 어느 가게에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지)와 이동편의 정보(어느 지하철역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는지)를 통합해서 국가 주요 공공정보로 개방하고 관리하자는 제안도 했다. 지난 6년 동안 장애청소년 부모로서 이야기해왔던 내용을 특위의 정식 어젠다로 발표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했다.
특위에서 여러 장애 전문가, 당사자들과 이야기하면서 시대가 바뀌었음을 체감했다. 장애인뿐 아니라 교통약자 포함 '유니버설 디자인' 택시를 활성화시키려면? 개별이동수단(휠체어, 자가용, 렌터카, 전세버스 등)을 장애인 이동용에 포함하려면 어떤 법부터 풀어야 하는지? 이런 주제들은 장애인 이동증진이 단순한 시혜나 복지 차원이 아님을 각 관계부처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앞으로의 과제가 더 크다. 30일 발표회에서 장애계 인사들이 우려했듯이 특위가 정성들여 만든 보고서가 보고서로만 끝나서는 안 되고 실제 집행을 위한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마침 대통령이 지난해 말 특위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장애인 이동증진에 대한 힘을 실어줬다는 건 고무적이다.
토론 막판에 연세대 김종배 교수가 소개한 스웨덴 퍼모빌(Permobil)이란 회사가 기억에 남는다. 세계 최대 휠체어 제조기업으로 전 세계 양질의 휠체어기업을 사들였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스웨덴의 장애보조기기 지원금 덕분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추산에 따르면 장애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16%다. 보조기기인 휠체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더니 스웨덴의 수출산업이 된 것이다. 접근성과 이동편의가 증진되면 관광에도 도움 된다. 비단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고 해도 이동권은 기본 인권이란 건 말할 것도 없다.
4개월간의 특위 활동 후 느낀 점이 있다. 이미 사회적으로 바뀌고 있는 인권의식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장애인 정책 체계는 '그거 복지부 담당 아니에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처럼 국가장애인위원회가 필요한 이유다. 한국의 장애 관련 법안들은 서로 흩어져 있고 애매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뿐인가. 보조기기를 산업으로 본다면 중소기업벤처부도 들어와야 하고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해 노동부 교육부 등과도 당연히 조율해야 한다. 이렇게 부처별로 조율하며 장애 정책의 큰 그림을 만들 수 있는 범부처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 특위 활동은 장애 정책에 있어 일종의 조각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 이동권의 실현이라는 조각보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통합'위원회 이름에 맞게끔 실과 바늘, 그것을 움직일 손까지도 앞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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