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눈이 와서 사방이 조용한 날, 초등학교 2학년짜리 여자아이를 데리고 젊은 엄마가 들어왔다. 오래 책을 둘러보다 각각 음료 한 잔을 시킨 그들은 책 한 권씩을 집어 들었다. 아이는 의자에 앉아 두꺼운 책 표지를 딱 젖히고서는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맘먹고 책을 읽을 요량이었다. 음료를 만들다 말고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희는요. 책을 구입해서 보셔야 해요. 책이 낡아지면 판매를 할 수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그러자 엄마는 겸연쩍게 웃으며 책을 덮었고, 아이는 엄마 눈치를 보며 책을 덮었다. 책을 원래 자리에 갖다 놓고 음료를 마시며 엄마는 아이에게 말했다.
"책 보고 싶은 거 있어요?"
아이가 대답했다.
"없어요."
아니, 조금 아까 보려고 했던 책은 보고 싶은 책이 아니었나? 엄마는 다시 말했다.
"꼭 보고 싶은 책이라면 사줄게요."
그런데 아이는 그만 됐다고 했다. 안 봐도 된다고. 그러자 엄마는 마치 자신의 할 일이 끝난 양 큰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책 냄새나 실컷 맡고 가자."
그들은 나름 책 한 권씩을 골랐던 터였다. 심지어 엄마가 고른 책은 내 산문집이었다. 그런데 구입해 읽어야 한다는 말에 읽고 싶은 책이 없어진 것이다. 엄마는 휴대폰을 보며 아이에게 아주 친절하게 말했다.
"책을 만지면 안 돼요. 조심해서 걸으세요. 흘리지 말고 드세요."
휴대폰이 없는 아이는 엄마 눈치를 보며 몸을 배배 꼬다 음료를 홀짝거렸다. 엄마와 아이가 서로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둘 사이의 관계가 조금은 짐작됐다. 엄마는 한껏 교양 있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책을 잘 안 읽어요. 우리 애는 그래도 제가 책을 좀 읽히거든요. 인터넷으로 좋은 책을 사주니까요. 제가 책 관련 일을 했었거든요. 그러니 아무래도 다른 엄마들보다는 조금 책을 고르는 안목도 있고요. 엄마들도 책을 잘 모르잖아요."
그의 말을 듣느라 얼굴을 보니 마스크를 벗은 입술이 붉은 립스틱으로 번들거렸다. 팬데믹 덕분에 사람들 얼굴을 제대로 볼 일이 없었다. 더욱이 저렇게 진한 화장이라니. 나는 붉은 립스틱이 반가울 지경이었다. 나는 그의 입술을 보며 말했다.
"아이들이 직접 책을 골라야 책을 더 볼 텐데요. 그래야 나중에 책을 찾아 읽고, 또 나중에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책을 골라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다시 웃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요. 우리 애는 책을 좀 많이 읽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지요."
조용한 책방에 찾아든 '누추하신 손님'이 나는 재미있었다. 그러나 더 말을 섞지는 않았다. 아이 앞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스스로 책을 좀 아는 엄마라고 한껏 교양을 부리지만, 아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왕 구불구불 시골책방까지 찾아왔으니 책 한 권을 산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책도 좀 팔고. 아이에게 그것은 또 얼마나 큰 추억이 되겠는가. 돌아가 엄마와 함께 이곳에서 구입한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고, 그것은 나중에 서로에게 추억이 되어 어느 힘든 날, 슬쩍 꺼내면 위로가 될 텐데.
나에게 한없이 '귀한 책방'에는 가끔 이렇게 '누추하신 손님'이 온다. 값비싼 외제차를 타고 와 스스로 누추해지는 손님들도 있는데 그들을 보는 것도 심심할 때는 즐겁다.
※이번 칼럼 제목은 숀 비텔의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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