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명 영정 든 유가족, '참사 100일' 추모행진
예고에 없던 분향소 설치에 경찰-유가족 대치
추모객 발길 이어져... 서울시 "기습 설치 유감"
이태원 참사 100일째를 하루 앞둔 4일 추모 행진을 연 유가족들이 서울시청 인근에 분향소를 새로 설치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전 11시 4분쯤부터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합동 분향소에서 대통령 집무실 앞 삼각지역을 거쳐 종로구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추모행진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은 참사 희생자 159명의 영정을 한 점씩 건네받아 품에 안았다. 유가족이 함께하지 못한 희생자의 영정은 천주교·불교·개신교·성공회·원불교 등 종교인들이 대신 들고 행진했다.
붉은 목도리에 흰 장갑을 쓴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한명, 한명 호명되고 영정을 건네받자 품에 안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 유가족은 "어유, 어유"하며 말을 잇지 못한 채 고인의 사진을 쓸어내리며 통곡했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우린 오늘 아이들과 함께 광화문으로 우리 목소리를 국민에게 가까이 내기 위해 나가려 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청하려 나가고자 한다. 이상민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려 한다. 이태원 참사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설치를 요구하려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추모 행진에 참여한 이들은 "국가책임 인정하고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 "참사의 공식 책임자 행안부 장관을 파면하라" "성역없는 진상규명 위해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하라" 등 구호를 외치면서 걸음을 이어갔다.
당초 이날 행진은 녹사평역에서 시작해 삼각지역, 서울역, 시청역을 거쳐 광화문 북광장에서 오후 1시 30분쯤 종료될 예정이었다. 이후 2시부터 100일 시민추모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후 1시 10분쯤 서울시청 광장 앞에 도착한 유가족들과 시민대책회의는 기습적으로 서울도서관 앞 인도에 분향소 설치를 시도했다.
주최 측은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을 막아 시청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려고 합니다. 경찰을 막아주십시오. 분향소 설치를 도와주십시오. 서울시청 앞에 분향소를 차릴 수 있도록 경찰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앞서 유가족들은 광화문 광장 세종로공원 내 희생자 추모공간을 설치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안전사고 우려 등을 이유로 불허했다.
이에 유가족 등이 설치 공간 확보를 위해 서울시청 앞에 모여들었고, 경찰이 이를 저지하면서 약 5분간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경찰은 ”신고 되지 않은 장소에서 불법 집회를 하고 있다“며 시민과 유가족들을 강제해산 시도했다. 그러나 유가족과 시민들이 경찰 기동대를 밀어내 분향소 설치 공간을 마련했다.
이후 유가족·시민들과 경찰 간의 대치가 계속되다가, 2시쯤 분향소 설치가 끝나고 159명의 영정 사진이 차례대로 제단에 올라갔다. 당초 광화문에서 예정됐던 시민추모대회도 오후 2시 45분쯤부터 시청 옆 세종대로에서 진행됐다. 주최 측은 2만 명 가량의 시민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날 추모대회에서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지금까지 정부는 없었고, 책임자들이 책임을 회피했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 자리에는 야 3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대표들도 참석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유가족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 추모대회가 종료된 이후부터는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서울시는 이날 늦은 오후 "서울광장 분향소 기습 설치에 유감을 표한다"며 "불특정 시민들의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해야 하는 광장에 고정 시설물을 허가 없이 설치하는 것은 관련 규정상 허용될 수 없으며 더욱이 시민간의 충돌, 안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므로 허가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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