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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고 사기 치고 속여 팔고… 마스크 착용 840일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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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고 사기 치고 속여 팔고… 마스크 착용 840일의 '그늘'

입력
2023.02.06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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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초기 사기 빈번, 불량 유통도
숱한 착용 시비, 폭행 범죄로 이어져
착용 여부, 양형 변수로 작용하기도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지난달 30일 경기 이천시 한국도예고에서 학생들이 마스크를 벗고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지난달 30일 경기 이천시 한국도예고에서 학생들이 마스크를 벗고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는 이제 마스크를 떠나보내려 한다. 지난달 30일 일부 필수시설을 제외한 실내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노 마스크’ 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마스크는 지난 840일 동안 바이러스 방어의 최후 보루이면서, 동시에 일상을 성가시게 한 ‘애증’의 존재였다. 3년간 얇은 천조각 하나 때문에 많은 일이 있었다. 구입을 위해 밤새워 줄을 서기도 하고, 착용을 둘러싼 실랑이도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마스크는 범죄 유발자가 되기도 했다. 마스크가 원인이 돼 확정 판결이 난 사건만 지난해 600건이 넘었다. 다수 피의자들은 감염병만 아니었다면 선량한 시민으로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래저래 코로나19가 빚은 씁쓸한 자화상이다.

① 마스크 대란에 사기범 속출

'공적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 2020년 3월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약국에 시민들이 마스크 구매를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공적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 2020년 3월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약국에 시민들이 마스크 구매를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5일 한국일보가 대법원 판결문 검색시스템을 통해 확인해 보니 ‘마스크’ 단어가 들어간 확정 판결문은 작년 한 해 1,478건이었다. 예상대로 공무집행방해(210건), 업무방해(144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운전자 폭행ㆍ101건) 등 착용 시비에서 촉발된 사건(486건)이 많았다. 사기나 물가안정법, 약사법 등 마스크를 빌미로 사익을 취하려다 덜미를 잡힌 경우도 148건이었다. 나머지 844건은 코로나19와는 무관했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극심하던 감염병 유행 초기엔 ‘사기’가 판쳤다. 60대 A씨는 2020년 3, 4월 세 차례에 걸쳐 “마스크 1,000만 장을 장당 800원에 줄 테니 계약금을 먼저 달라”고 속여 지인 4명에게서 2억5,000만 원을 가로챘다. 그해 5월엔 마스크를 생산해 주겠다며 유통업체를 꾀어 1억 장의 공급계약을 체결한 후 계약금 5억 원을 떼먹은 일당도 있었다.

‘한탕 심리’를 노린 투자 사기도 빈번했다. “마스크 생산라인을 구축했으니 4,000만 원을 투자하면 지분 20%를 보장하겠다”면서 돈을 뜯어낸 사기범에게 징역 8개월이 선고됐다.

기준 미달 마스크를 유통한 양심 불량 역시 적지 않았다. 50대 인쇄업자 B씨 등은 2020년 2, 3월 안면부만 있는 폐마스크를 구입해 귀걸이용 끈만 달아 8만8,000여 장을 재가공한 뒤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도 없이 ‘KF94’로 기재해 팔았다. 2020년 3~6월 중국산 마스크 34만 장을 밀수입해 KF94로 속이는, 속칭 ‘포대갈이’ 수법으로 3배 이상의 마진을 남긴 일당도 적발됐다. 이런 사기 범죄는 정부의 강력한 단속과 생산업체 증가 등 마스크 수급이 점차 안정화하면서 사라졌다.

② "뭔데 쓰라 마라"... 분노 촉매제

마스크 관련 범죄 확정 판결. 그래픽=박구원 기자

마스크 관련 범죄 확정 판결. 그래픽=박구원 기자

대신 실내ㆍ외 마스크 착용 의무 등 방역 수칙이 빡빡해지자 시비가 급증했다. 2020년 5월부터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하고 여름철 더위로 이른바 ‘턱스크족’이 출몰하면서 버스나 택시기사를 상대로 한 폭행이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운전자 폭행) 발생 건수는 2020년 2,894건에서 2021년 4,259건으로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C씨는 2020년 7월 경기 성남에서 “마스크를 제대로 써 달라”는 버스기사 얼굴을 머리로 들이받고,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결국 감옥에 갔다. 이듬해 4월에는 서울 강북구에서 버스 승차를 거부당한 50대가 택시를 타고 쫓아와 기어코 버스에 탑승한 뒤 기사를 때렸다. 지난해 2월 경기 부천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는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등 난동을 부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까지 손을 댄 남성이 붙잡혔다. 기사가 폭행을 피하려다 핸들을 잘못 조작해 2차 사고로까지 이어질 뻔했다.

술집ㆍ식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1년 10월 전남 구례의 주점에선 한 남성이 마스크를 써 달라는 옆 테이블 손님을 과도와 철제 호미로 공격하려다 경찰에 검거됐다. 경기 시흥의 한 호프집에서는 손님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40대 여성 종업원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리친 일이 있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활동 제한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재된 불만이 마스크 착용 요구와 맞물려 일종의 분노로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③ 마스크에 가려 미성년자 몰랐다?

서울에서 운행 중인 시내버스. 뉴시스

서울에서 운행 중인 시내버스. 뉴시스

드물긴 하지만 마스크는 유ㆍ무죄 판단이나 양형 결정에 주요 변수가 되기도 했다. 2021년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만난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남성 사건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여성이 긴 머리에 흰색 마스크를 써 피고인이 성인으로 오인했을 수 있다고 봤다. 19세 이상 성인이 16세 미만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하면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미성년자 의제강간죄로 처벌받는다. 다만, 범행 당시 피해자가 만 16세 미만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피해자의 마스크 착용이 피고인에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전남 화순군의 편의점주도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판매한 혐의(청소년보호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무죄를 받았다.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도록 강제한 상황에서 마스크를 벗게 한 뒤 신분증을 확인할 의무까지는 없다는 이유였다.

박준석 기자
이서현 기자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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