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 맞은 한국형 항공모함 사업
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수직 이착륙 전투기 탑재 경항모’라는 시대착오적인 개념으로 추진되다가 2년간 표류했던 한국형 항공모함 사업이 최근 방위사업청의 새 연구용역 보고서가 공개되며 전환점을 맞고 있다. 방사청은 보고서를 통해 F-35 시리즈 가운데 성능이 가장 떨어지지만 가격은 가장 비싼 F-35B 10여 대를 탑재하는 3만 톤급 경항모를 포기하고, 한국형 전투기인 KF-21의 해상형을 개발해 5~6만 톤 규모의 정규항모에 탑재한다는 입장을 정리해 이를 국회에 보고했다.
이번 연구용역 결과에서 한국형 항모는 KF-21 해군형 16~28대, 조기경보기 2대, 구조헬기 2대 등 20~32대의 함재기를 탑재하고, 항공기 운용 방식은 기존에 검토되던 수직 이착륙·스키점프 방식 대신 미국 정규항모에 쓰이는 사출기(Catapult)와 강제착함장치를 사용하는 사출기이함(CATOBAR ·Catapult Assisted Take Off But Arrested Recovery)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보고서가 제시한 KF-21 해군형 개발 소요 시간은 8년 6개월로 한국형 항모가 건조되는 시점에 맞춰 완성할 수 있다는 결과도 제시됐다.
방사청, 5만~6만톤 정규항모 모델 제시
새로 발표된 연구 보고서를 통해 군 당국이 한국형 항공모함 사업을 ‘정상화’시키는 데까지는 무려 8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필자는 박근혜 정부 시기였던 지난 2015년, 국방부와 해군전력분석시험평가단의 의뢰로 수행된 '차세대 첨단함정 건조 가능성 검토' 연구 사업에 연구원으로 참가해 함형(艦型)과 함재기 운용 방식, 작전요구성능 등의 분석과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번에 방사청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 속 한국형 항모는 8년 전 필자가 내놨던 항모 모델에서 함재기만 F-35C에서 KF-21로 바뀐 것이다. 이미 8년 전에 항모의 함형과 요구 성능, 함재기 운용 방식 결론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항모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건 다름 아닌 해군 때문이었다.
2015년 당시 연구진은 현존·미래 위협을 분석해 한국형 항모에 요구되는 성능을 도출한 뒤, 이를 바탕으로 항모의 함형과 함재기 탑재 수량을 결정하고, 함재기 후보 기종들의 성능과 비용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F-35C 전투기를 탑재하는 만재배수량 7만 톤 규모 CATOBAR 방식 항공모함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해군은 이 중형항모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해군은 3만 톤 안팎의 소형항모가 7만 톤 규모의 정규항모보다 건조 비용이 2조 원 이상 싸기 때문에 지나치게 비싼 중·대형 항모는 합동참모본부 소요 결정 과정에서 반대에 직면할 우려가 크다고 우려했다. 해군은 최종 보고서에 경항모를 명시해 줄 것도 요구했다. 반대로 연구진은 3만 톤 규모의 경항모는 한반도 안보 환경에서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며, 비용 대비 효과가 매우 떨어진다고 반박하며 해군 측과 충돌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연구진의 요구가 관철돼 보고서에 '7만 톤급 대형항모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업 종료 직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새 정부(문재인 정부)는 한국형 항모가 지나치게 주변국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며 기존 연구 결과를 사장시켰고, 새 연구용역을 통해 F-35B 10여 대를 탑재하는 3만 톤급 경항모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일부 예산도 통과되고, 홍보용 영상까지 등장하는 등 추진력 있게 진행되는 듯보였지만, F-35B 전투기의 가격 상승과 낮은 성능이 알려지고, 경항모의 전략적 효과가 매우 떨어진다는 전문가 지적이 쇄도하자 국회가 반대 입장을 보이면서 추진 동력을 잃었다. 이런 우여곡절이 이어지면서 8년이나 되는 시간이 허비된 것이었다. 한국형 항모는 돌고 돌아 다시 CATOBAR 방식의 중형항모라는 원점으로 돌아왔고, 이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졌다. 항모라는 것은 단순히 돈만 들인다고 가질 수 있는 무기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4만여명 해군, 예산 경쟁에서 언제나 약자
우리나라는 한국형 항모 사업을 본격화하기에 앞서 ‘해군’이라는 조직부터 손봐야 한다. 8년 전, 해군이 중형항모를 반대했던 이유는 합참과 국방부 소요결정 회의에서 육군과 공군을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3면이 바다이고, 북한의 존재 때문에 사실상 섬나라나 다름없는 지리적 환경 속에서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는 해군의 중요성이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크다. 그러나 우리 해군의 규모는 고작 4만1,000명이다. 46만4,000명에 달하는 육군, 6만3,000명 수준의 공군보다 작은 조직인 해군은 타군과의 예산 경쟁에서 언제나 약자 신세였다. 이 때문에 해군 수뇌부에는 예산안을 올리더라도 어차피 삭감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언제나 팽배했고, 그런 비관론 속에서 나오는 군함들은 성능과 체급 면에서 주변국들의 군함들보다 약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비관론이 더 심화되는 분위기다. 주변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함의 성능을 강화하면서 불가피하게 군함의 대형화가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군함에 태울 승조원 부족 현상이 극심해지면서 국방부·합참에 보낼 인력이 크게 줄어서다. 때문에 해군은 육상 근무 요원을 최소화하고, 주요 전투함 승선 인원도 정원 대비 80~90% 수준으로 조정하면서 뼈를 깎는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 3,000여 명의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러한 인력 구조조정으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군함과 조직에서 인력을 쥐어짜며 운영하는 구조에서 군함 승조원과 항공요원까지 합치면 1척에 1,000명 이상이 승선해야 하는 항모를 갖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형 항공모함은 해군의 병력 정원을 최소 4,000명 이상 늘리는 선행 조치 없이 만들어진다면 배가 있어도 태울 사람이 없는 ‘유령선’이 될 수 있다.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만들어진 항모는 태국의 사례처럼 부두에 틀어박혀 아예 ‘관광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준비 없는 항모, 세금 먹는 괴물 될 수도
정원 개선 등 해군 병력 확충과 더불어 항모 운용에 대비한 합동부대 창설, 항모 및 함재기 운용 지상 실험·교육훈련 시설 확보도 지금 당장 추진되어야 한다. 중국의 경우 1980년대 초 류화칭(劉華清) 당시 해군사령관이 항모 도입 추진을 지시한 후 호주·소련의 퇴역 항모를 구입해 연구하고, 지상에 1:1 스케일의 항모 모형 시설을 만들어 온갖 실험과 훈련을 하며 30년 넘는 시간을 준비해 항모 보유국이 됐다. 하지만 랴오닝·산둥 항모 모두 아직까지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 항모전단과 항공단을 편성하고 항모에서 전투기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실험적 훈련들이 랴오닝함 취역 1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이뤄지고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가 항모를 제대로 운용하려면 전문 인력부터 양성해야 한다. 해군 정원 확대를 전제로 항모 사업 준비단을 따로 두고 항모를 운용할 해군 요원들과 함재기를 운용할 공군 요원들을 묶어 합동부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들의 장기복무와 진급을 보장하고 미 해군에 연수를 보내 군함에서의 고정익기 운용 개념과 교리를 기초부터 다져 놓지 않으면, 2030년대 초반 등장할 한국형 항모 역시 중국 항모와 마찬가지로 항모로서의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자칫 바다에 있는 시간보다 부두에서 때우는 시간이 더 많은 세금 먹는 괴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바다에 생명줄을 두고 사는 해양국가다. 중국이 항모대국으로 성장하고, 일본도 무서운 기세로 항모 전력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항모는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자산이 됐다. “유사시가 되면 국민들은 해군 항모전단의 위치를 물을 것이다”라는 해군의 항모 선전구호처럼 한국형 항모가 주변국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익을 수호할 수 있는 진정한 전략자산으로 태어나려면 그 항모의 운용 주체인 해군부터 키워야 한다. 이번 연구용역 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해군이 한국형 항공모함 사업을 올바른 방향으로 자신감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해군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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