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들의 연공형 호봉제를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주도할 상생임금위원회가 이달 초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직무 중심, 성과급제로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과 귀족노조와 타협해 연공서열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차별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고도 성장기에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호봉제는 적잖은 부작용을 노출해왔다. 장기근속 고연봉자를 줄이기 위해 조기 퇴직이 일상화됐고, 근속기간이 짧은 비정규직에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윤석열 정부만이 아니라 역대 정부에서 한결같이 호봉제 폐지를 강조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하지만 어제 국회에서 열린 금속노조 주최 ‘삼성 성과급 임금제도 현황과 폐해’ 토론회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는 과연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성과급제가 호봉제의 대안이 될 수 있느냐를 묻고 있다. 심층 면접 등을 통해 파악된 사례를 보면 법에 보장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하위 고과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차별적 고과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기존 업무와 전혀 다른 일을 맡기고 저성과자로 낙인을 찍는 사례도 있었다.
단순히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로 높은 연봉을 받는 현재의 구조를 바꿀 때는 됐다. 현실적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호봉제에 안주하는 대기업 노조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성과급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담보돼야 한다. 금속노조의 연구 결과에서 보듯, 정부가 성과급 도입을 무턱대고 밀어붙이면 지금보다 훨씬 불공정한 임금체계만 확산될 것이다. 직무급제 역시 낮은 직무 등급에 속한 노동자들의 저임금 고착화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무엇보다 임금체계는 노사의 자율적인 합의가 우선이다. 정부가 민간기업에 호봉제를 고수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는 건 과도한 개입이다. 정부의 역할은 성과급이나 직무급이 바람직한 형태로 정착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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