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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의 몫, 이어달리기

입력
2023.02.08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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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중한 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 사회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을 위해 싸워오셨던 임보라 목사가 지난 3일 별세했다. 직접 그를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을 위한 연대의 자리, 인권과 평화의 목소리가 필요한 곳에 항상 그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자리마다 항상 그가 있을 줄 알았다.

그의 부고를 듣고 마지막 가시는 길 인사를 드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소리 없는 아우성이 내 마음속에서 일었다. 그와 내가 함께 믿고 있는 신에게 항변했다. '임 목사만큼 치열하고 처절하게 당신의 말씀을 구현해내기 위해 노력한 이가 있었나요. 그가 싸우고 분투하던 일들의 열매를 조금이라도 보고 가게 하시지 왜 이렇게 빨리 그를 데려가시나요'라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 내었다.

자신의 존재를 걸며 구현하고자 했던 그리스도의 사랑, 그 사랑을 실천하다, 오히려 한국 교회에서 이단이라 낙인찍히며 배척당해야 했던 임보라 목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는데 왜 고난받아야 했나.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치던 교회가 어떻게 사랑을 실천한 이를 핍박할 수가 있나. 의로움을 실천한다는 것이 이렇게 가혹한 일이었나. 어떻게 그에게 이렇게 치열한 삶만 살다 가게 할 수가 있나. 혐오보다 사랑이, 배제보다 포용이 더 힘이 있다고 하였으나,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니었던가. 그의 부고가 이를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회의가 일었다.

이런 질문들을 안고 그의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난 보았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 수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다. 또 그가 우리 사회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얼마나 크고 너른 밭이었는지를 말이다.

그에게 사랑의 세례를 받았던 이들이, 그에게 용기를 얻었던 이들이, 그와 평화와 인권의 어깨동무를 함께 했던 이들이 장례식장과 복도를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또 그들이 보낸 메시지들로 계속 채워지고 있었다. 그의 부재를 아파하며, 그의 안식을 기도하며, 그가 남긴 과제를 어떻게 이어받을지를 고민하며, 그렇게 서로의 슬픔을 함께 위로하고 있었다. 모두 '임보라'라는 밀알이 남긴 사랑과 평화와 인권의 열매들이었다.

나는 그의 부고로 인해 혐오가 사랑보다 더 힘이 센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는데, 그는 마지막까지 사랑이 혐오를 이길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의 장례식장에 모인 수많은 이들이 그 증인들이 되어줄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바로 너, 너만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고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의 사진 앞에 꽃을 놓고 인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그를 왜 데려가셨을까' 대신 '어떻게 하면 그가 달려온 길을 잘 이어 달릴 수 있을까'를 묻기로 했다. 그만큼 치열하게 전 생애를 걸며 달릴 수는 없겠지만, 이어달리기하다 나의 안온한 삶이 흔들릴까 주저되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이 질문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것이 남은 자의 몫이고, 그와 동료로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임보라 목사가 만들고자 했던 길, 우리 사회에 보다 넓은 사랑과 평화와 인권의 길이 세워지는 데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찾아 하는 것, 그것이 임보라 목사님을 추도하는 방법임을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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