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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엔 내복 차림 아이들 시신, 병원은 전체가 응급실..."지진이 만든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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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엔 내복 차림 아이들 시신, 병원은 전체가 응급실..."지진이 만든 지옥"

입력
2023.02.08 04:30
수정
2023.02.08 11:28
2면
0 0

7.8 강진 5000명 사망 '대참사'
담요 쌓인 '작은 시신들' 줄 이어
내복 차림 아이 극적 구조하기도
병원도 아비규환 "전체가 응급실"
강추위, 여진 속 필사의 구조작업


6일(현지시간) 발생한 강진으로 마을 전체가 붕괴된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쉬. 로이터 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발생한 강진으로 마을 전체가 붕괴된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쉬. 로이터 연합뉴스


지진이 덮친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 지역에서 한 어린이가 산소마스크를 쓴 채 구조되고 있다. 어린이 얼굴 곳곳에 난 상처가 지진 당시의 참혹함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들리브=UPI 연합뉴스

지진이 덮친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 지역에서 한 어린이가 산소마스크를 쓴 채 구조되고 있다. 어린이 얼굴 곳곳에 난 상처가 지진 당시의 참혹함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들리브=UPI 연합뉴스


#. "한 살짜리 우리 손자가 저기 갇혀 있어요. 12층에서 자고 있었는데 찾을 수가 없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규모 7.8의 강진이 집어삼킨 튀르키예 남부 도시 아다나. 산더미 같은 잔해만 남긴 채 형체도 없이 붕괴된 아파트 터를 가리키며 할머니 임란 바후르씨는 절규했다. 꺼져 가는 목소리로 "제발, 제발"이란 말만 되뇌며 눈물을 쏟고 또 쏟았다.

#. 인근 도시 카흐라만마라스 파자르치크.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에서 딸을 간신히 구출한 한 아버지는 딸을 품에 안고 무작정 달렸다.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내 주저앉은 그는 내복 차림으로 머리에 하얀 재를 뒤집어쓴 딸을 어루만지며 그제야 안도의 눈물을 토해냈다.

6일(현지시간) 새벽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 지대를 덮친 지진으로 일대는 '죽음의 섬'이 됐다. 분주한 삶의 터전은 사라지고 건물 파편과 흙먼지만 남았다. 섭씨 영하 6도까지 떨어진 강추위와 몰아치는 여진 속에서 구조 인력이 사투를 벌였지만 7일까지 사망자가 속출했다. 가까스로 살아나온 사람도 있었으나 아무도 웃지 못했다.

최소 5000명 사망... 어린이, 여성에 피해 집중

소방관, 군인 등 1만여 명의 구조대원들은 이틀째 목숨을 걸고 생존자를 수색했다. 민간인들도 나섰다. 무른 지반 탓에 건물이 대거 완파된 현장은 처참했다. 대형 굴삭기가 산산조각 난 건물 잔해를 들어 올렸고, 구조대원들은 "천천히, 천천히!"를 외쳐가며 전기톱으로 콘크리트를 절단했다. 파묻힌 생존자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보이는 건 잔해뿐이었다. 구조대원들은 잔해를 헤치다 비명 혹은 신음이 들리는 지점으로 달려갔다. 귀를 대고 생명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고, 대답을 기다리며 "제 말 들리세요?"라고 소리쳤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어 갔다. 7일 오후(한국시간)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확인된 사망자는 5,000명, 부상자는 2만 명에 육박했다. 지진이 새벽 4시에 발생하는 바람에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 목숨을 구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재난이 그렇듯 어린아이와 여성에게 피해가 몰렸다. 곳곳에서 아이들의 시신이 목격됐다. 시리아 북서부 마을 아즈마린에선 담요에 쌓인 작은 시신들이 땅에 줄지어 누워 병원 후송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흐라만마라스 파자르치크의 무너진 건물 앞에서 하산 비르발타씨는 "며느리와 손주 2명이 못 빠져나왔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가망 없는 부상자는 산소호흡기 제거"... 생지옥

튀르키예 하타이의 한 병원. 부상자들이 몰려들었고 병상이 없어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있는 환자도 있다. EPA 연합뉴스

튀르키예 하타이의 한 병원. 부상자들이 몰려들었고 병상이 없어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있는 환자도 있다. EPA 연합뉴스


의료 현장도 아수라장이었다. 병상은 일찌감치 동이 났다. 부상자들은 바닥에 누워 치료 순서가 오기를 기약 없이 기다렸다.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샤줄 이슬람씨는 "부상자 300~400명이 한꺼번에 들어와 병상 하나당 2, 3명의 환자를 눕히고 돌봐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중환자실은 지옥도 자체였다. 이슬람씨는 "생존 가능성이 그나마 높은 부상자라도 살리기 위해 가망 없는 부상자의 산소호흡기를 빼고 있다"고 했다. 피해 지역의 병원은 통째로 대형 응급실이 됐다. 시리아 미국 의료협회는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산부인과를 포함한 일반 병원들도 응급치료 병상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건 절망이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정부가 집계한 이재민은 수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흙더미가 된 집을 뒤로한 채 체육 경기장, 쇼핑몰, 주민센터 등에 마련된 임시 보호소에 피신했다. 우는 것 말고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타이에서 자녀 4명과 간신히 집을 빠져나왔다는 네세트 굴라씨는 외투도 걸치지 못한 아이들과 담요를 나눠 덮고 추위에 떨었다. 그는 "배고프고 목이 마르다. 재앙이나 다름없는 비참한 상황"이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추가 여진에 강추위 겹쳐..."시간과의 싸움"


튀르키예 하타이에서 무너진 건물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주민. 로이터 연합뉴스

튀르키예 하타이에서 무너진 건물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주민. 로이터 연합뉴스

피해 규모는 시시각각 커지고 있다. 피해 지역에 한파가 덮친 데다 여진까지 계속되면서 구조 작업이 고비를 맞고 있어서다. 잔해에 파묻혀 구조를 기다리는 생존자들이 저체온증에 빠지거나 여진으로 인한 추가 건물 붕괴가 잇따른다면 사망자 급증이 불가피하다. 영국 BBC방송은 "구조대원들이 시간, 그리고 악천후와 싸우고 있다"고 전했다.

전기 공급이 끊기고 도로망이 무너지면서 구호 물품 전달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지진이 난 시리아 서북부 지역은 도로와 공급망 등이 파괴돼 긴급 구호 자금을 집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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