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은 고금리 시기엔 와닿지 않겠지만 금리 인하는 돌아온다. 먼 훗날의 일도 아닐 테다. 금리 인상 배경인 고물가가 서서히 잡히고 경제도 더 주저앉는다면, 경기를 살릴 '한 방'인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아우성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금리 인하 시기는 전 세계 금리를 쥐락펴락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제롬 파월 의장의 최신 발언에서 힌트를 얻는다. 그는 가팔랐던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면서 "올해 금리 인하는 없다"고도 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미국 금리가 내년 이후 내려갈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읽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13일 "연내 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면서도 "물가 상승률이 3%대로 떨어지면 경기를 고려해 통화 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물가가 내려갈 올해 하반기 이후 정점에 도달했을 금리 유지뿐 아니라 금리 인하도 선택지에 놓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금리 인하는 뚜렷한 저성장 타개책을 내놓기 쉽지 않은 정부도, 크게 뛴 원리금 상환 압박에 허덕이는 국민도 반길 법하다. 하지만 꼭 탄성만 지를 일일까.
금리 인하가 두려운 면부터 걱정해 본다. 다가올 금리 인하 시기엔 누구나 저금리를 누리지 못하는 '대출 불평등'을 처음 겪을 수 있다. 금융권이 소득만큼 돈을 꿔주도록 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정착해서다. DSR 규제를 아직 도입하지 않아 너나없이 영끌하던 2년 전 저금리 때와는 딴판인 '신저금리 시대'다.
고소득층이든 서민층이든 굳이 빚을 내지 않으려는 금리 인상기에 DSR의 위력은 강하지 않다. 반면 차주가 선뜻 대출에 나설 금리 인하기엔 달라진다. 소득에 따라 대출액 차이가 분명해져, 은행 돈을 많이 빌리기 어려운 저소득층일수록 금리 인하는 체감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출액 격차는 집, 주식 등 자산 격차까지 키우기 쉽다. 서민층은 고소득층에 비해 투자 종잣돈이 적은 만큼 자산을 불릴 기회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금리 인하기에 불붙는 부동산 시장이 대출 불평등에 따른 자산 불평등을 주도할 전망이다. 갚을 능력만큼 빌리게 한다는 DSR 규제의 순기능이 재분배 악화 앞에 무색해지는 셈이다.
앞으로의 금리 인하는 경기를 되살리지 못하는 첫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 경제는 위기 뒤에 매번 껑충 뛰었다. 성장률이 2009년 0.8%에서 2010년 6.8%로 상승한 금융위기, 2020년 –0.7%에서 2021년 4.1%로 회복한 코로나19 때가 그랬다. 나랏돈을 푼 확장 재정과 함께 금리 인하가 경기 반등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금리 인하가 경기를 살리기에 역부족인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인 2040 인구가 갈수록 줄고 있어, 금리를 내려봤자 찔끔 성장하는 저성장이 성큼 다가왔다. 한국 경제의 밥줄과도 같았던 중국 경제의 후퇴, 경기 부양 '원투펀치'인 나랏돈 풀기에 부정적인 윤석열 정부의 긴축 재정 노선 역시 금리 인하 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다.
결국 관건은 저금리가 집값 급등·격차 확대로 이어지는 고리 차단, 저성장·중국 부진을 만회할 새로운 먹거리 확보에 있다. 금리가 내려가기까지 1년은 남아 보인다. 이 기간 과거 저금리 때 겪지 못했던 상황을 대비해야만 금리 인하는 비로소 환호성을 받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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