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 ‘초밥 테러’, SNS 바보짓의 역사가 길다
최근 일본에서 유명한 회전초밥 프랜차이즈에서 촬영된 ‘초밥테러’ 동영상이 구설수에 올랐다. 일부 손님이 회전대 위에 진열된 회전초밥에 침을 묻히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간장병이나 이쑤시개를 오염시키는 등 고약한 장난질을 하고 이를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것이다. 이 일이 해외의 매스미디어에도 ‘스시 테러리즘(sushi terrorism)’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되면서, 철저한 위생과 정성스러운 손님 대접을 자랑으로 삼아온 일본 외식업계도 적잖게 당황한 듯하다. 그런데, 이 불미스러운 해프닝이 크게 논란이 되면서, 오히려 악동들의 장난 본능에는 불이 붙은 모양이다. 식당이며 마트 등에서 짓궂은 장난질을 하는 동영상이 SNS에 더 자주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그 이전에 일본의 초밥집에서 매운 고추냉이를 잔뜩 얹은 초밥을 내놓아 한국인 관광객이 봉변을 겪었다는 ‘고추냉이 테러’에 대한 보도도 보았다. 일본에 오래 살았지만 한국인이기 때문에 음식점이나 가게에서 곤란한 일은 당했던 경험은 없었다. 오히려 외국인이라고 하면 친절하게 배려해 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고추냉이 테러’가 정말로 한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악의적인 행동인지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을 얹기가 꺼려진다. 다만,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못된 짓을 하는 모습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촬영해 스스로 SNS에 공개하는 일이 꽤 오래전부터 보고되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젊은 층에서 인기가 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트위터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바캇타(バカッター)’라고 불리는 현상이 회자되었다. 바캇타는 바보, 멍청이를 뜻하는 일본어 ‘바카(馬鹿)’와 트위터(ツイッター)를 조합한 신조어다. 자기 자신을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는 장난질이나 비행, 범죄 행위를 트위터에 공개하는 젊은이들의 어리석은 행동 혹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바보 트윗’ 혹은 ‘바보 트위터리안’ 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
이 바캇타의 가장 전형적 패턴 중의 하나가,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직원이 식재료를 함부로 다루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SNS에 공개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햄버거, 초밥, 덮밥, 피자 등 바캇타 피해를 본 대중 외식 장르가 한둘이 아니다. 삐끗하면 범죄가 될 수 있는 비행이나 불량 행동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패턴도 있다. 예를 들어, 주차되어 있는 경찰차에 올라타 펄쩍펄쩍 뛴다든가, 안전상의 이유로 출입이 금지된 기차역 철로에서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는 등, 악질적인 범죄는 아니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도가 지나친 행동을 SNS에 당당히 공개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초밥테러도 딱 이 패턴이다. 일본에는 SNS에서 바보짓을 자랑하는 역사가 의외로 길다고나 할까?
◇일본의 젊은이 사이에서 ‘바보 트윗’이 인기인 이유
일부라고는 하지만 일본의 젊은이들은 왜 이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일까?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요, 그저 재미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사후에 감당하는 책임도 무겁다. 최근 초밥테러로 피해를 본 회전초밥 프랜차이즈는, 소동을 일으킨 손님이 제 발로 찾아와서 사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확실하게 물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 손님은 짓궂은 장난질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생겼다. 이전에도 식재료에 못된 짓을 하는 동영상을 올린 아르바이트 직원이 해고당하거나, 탈법 행위를 SNS에 공개한 이용자가 실제로 입건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사실 바캇타라는 이름이 붙은 것에는 자기의 비행이나 문제 행동을 스스로 SNS에 올려 공개하는 바람에 처벌을 자초한다는 조롱의 뜻도 담겨 있다. 이런 일이 불거질 때마다 일본의 기성 세대는 젊은이들에 대한 걱정을 쏟아낸다. 젊은이들의 시민의식 부재를 한탄하는가 하면,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리터러시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습관적으로 제기된다. 이런 걱정에도 나름의 근거가 있을 테지만, 디지털 미디어를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역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주 무대인 SNS의 특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SNS에서는 다른 이용자의 계정에 오른 콘텐츠를 나의 네트워크에서도 확산시키는 ‘리트윗’ 기능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가동되지만,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 콘텐츠를 비웃거나 조롱하는 비판적인 의미로 수행되는 리트윗도 적지 않다.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당당히 공개하는 바캇타는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리트윗을 자주 받는 콘텐츠다. 대부분의 경우 부정적인 이유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리트윗을 받으면 다른 이용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쉽다. 사실 이 리트윗 기능이야말로 SNS 생태계를 활기차게 유지하는 엔진과도 같다. 나만의 좁은 네트워크에 갇히지 않고, 타인의 네트워크와 만나고 폭넓게 교류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트윗은 동시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많은 리트윗을 받고 싶다는 욕망을 부채질하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결국 바캇타처럼 흥미 본위의 콘텐츠가 손쉽게 확산되는 원리로도 작동하는 것이다.
◇관심경제는 글로벌한 현상이다.
SNS 생태계는 다른 이용자의 눈길을 끌거나 화제가 되는 것을 최우선의 경제적 효과로 치부하는 이른바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의 원리가 잘 작용하는 곳이다. SNS에는 수많은 이용자들이 올린 무수히 많은 지식과 정보가 항상 넘쳐 흐른다. 검색 기능이나 인덱스를 활용하면 원하는 지식이나 정보에 접근하기도 쉽다. 반면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하늘의 별처럼 많은 지식이나 정보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쉽지 않다. 디지털 생태계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손에 넣기 어려운 희소재인 것이다. 관심경제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바캇타와 같은 어리석은 행위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주변으로부터 비상식적이라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리트윗을 번다는 측면에서는 효과적이라는 점에서다.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인 ‘관심’을 획득할 수 있는 효율적인 행동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일본의 바캇타만의 사정일까? 한국에서도 클릭 수를 벌기 위해 도가 지나친 연출을 하는 유튜버나,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콘텐츠를 올려 리트윗을 유도하는 SNS 이용자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관심병’이니 ‘관종’(‘관심종자’를 줄인 말로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높은 상태를 뜻하는 인터넷 은어) 등 이런 세태를 풍자하는 말도 있다. 사회적으로 드러나고 평가받는 맥락은 다르지만, 일본의 바캇타나 한국의 관종이나 관심경제적 현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디지털 생태계는 국가나 문화를 훌쩍 뛰어넘는, 글로벌한 현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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