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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이 멈추지 않는 한, 백래시는 영원히 존재한다"

입력
2023.02.10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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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백래시 정치' 출간한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편집자주

책, 소설, 영화, 드라마, 가요, 연극, 미술 등 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젠더 이슈를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봅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가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신간 저서 '백래시 정치'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가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신간 저서 '백래시 정치'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백래시(backlash·반동)'.

젠더든, 인종이든, 계급이든, 지역이든 사회적 소수자들이 제기하는 정의에 대한 요구를 묵살하거나 반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3년 '한국형 백래시'는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라 할 수 있겠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사상이나 활동에 대한 집단적 공격이 힘을 얻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 '여경 무용론' '남성 역차별론' 등이 대표적 예다.

'백래시'라는 단어가 시나브로 보통명사처럼 취급되고 있지만, 정작 학술적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가 최근 출간한 '백래시 정치(동녘 발행)'는 그래서 가치 있다. 다소 빈약했던 백래시의 이론적 토대를 촘촘하게 쌓았다. 개념, 역사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서의 현재적 의미, 그리고 효과적 대응법까지 종합적으로 제시한다.

"팬데믹 시기 바이러스가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듯 백래시는 사회 진보가 있는 곳에 반드시 존재합니다.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을 상황에 따라 선택하듯 백래시에 대해서도 유연한 태도가 필요한 이유죠."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여가부 폐지 시도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여자가 발언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여가부 폐지 시도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여자가 발언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신 교수는 민주적 진보가 일어나는 사회에서 백래시는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60년대 민권 운동과 70년대 제2물결 페미니즘이 지나간 미국은 80년대와 90년대에 거쳐 극심한 백래시와 맞닥뜨린 바 있다. 21세기 들어 세계 경제 위기로 경제적 양극화와 신자유주의 통치성이 심화하면서,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불안을 약자에 투사하는 백래시가 더욱 만연해졌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해외 사례도 풍성하게 담았다. 미국은 '트럼피즘'이라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증오 정치의 결과로, 50여 년간 지속돼 온 여성의 임신중지권 보장을 폐기했다. 독일은 극우파 정치인들이 우익 포퓰리즘 운동단체와 결합해 가족정책, 난민과 이주민 정책, 학교 성교육 등 여러 사회·정치적 이슈에 안티페미니즘을 동원했다. 헝가리, 폴란드 등에서는 행정부의 여성정책 조직이 폐지되거나 축소됐다.

책은 정치인 이준석의 국민의힘 당대표 당선이 한국 사회의 '백래시 정치'에 가속 페달을 달았다고 본다. 그전까지의 안티페미니즘은 일부 커뮤니티의 익명 의견에 불과하거나 몇몇 정치인의 전략에 불과했는데 그의 등장 이후 공적 담론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트럼피즘'이 백인 노동계급의 절망을 활용한 것처럼, 이준석은 경쟁에서 밀려난 청년 남성의 분노를 자극해 지지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신 교수는 청년 남성을 둘러싼 지표가 악화하고 과거 남성들이 가졌던 가부장적 특권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증오를 여성 집단에 투사할 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성별 임금 격차에서 26년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별 격차가 극심한 나라다. 주로 여성과 노동을 연구하는 그는 책에서 청년 세대가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과 젠더 의식을 데이터로 꼼꼼하게 논증하며 '구조적 성차별'의 실체를 드러낸다.

"해외 국가에서 백래시는 여성운동의 '성과'에 반발해 등장하는데, 정치가 백래시를 부추긴 한국에서는 성평등 성과가 가시화하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입니다. 여성운동을 앞서 제압하려는 시도죠."

책은 현상 분석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이처럼 백래시가 '상수'로 존재하는 사회에서 여성운동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제시하면서다. 그는 2020년 유엔여성기구에 제출된 보고서를 인용하며 "안티페미니스트 공격을 일시적인 주장이나 비정상적 요구로 보기보다는 여성운동의 실천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반사회적 운동으로 보아야 한다"고 본다.

"여성운동이 멈추지 않는 한 백래시는 영원히 존재합니다. 단순히 백래시를 비판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반페미니즘 운동'까지 고려한 효과적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신경아 지음ㆍ동녘 발행ㆍ272쪽ㆍ1만6,000원

신경아 지음ㆍ동녘 발행ㆍ272쪽ㆍ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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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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