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별 특파원, 대지진 현장을 가다 <1신>
'지진 진원' 튀르키예 도시 카라만마라슈
아내, 딸과 40시간 만에 구조된 압둘라만
"우리처럼 살아오길" 희망으로 간절한 기도
8일 밤(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동부 도시 카라만마라슈. 한국일보가 목격한 구조 현장에선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붕괴돼 콘크리트와 철근 더미밖에 남지 않은 9층짜리 건물 터 앞에서 주민 압둘라만(52)씨를 만났다. 회색 먼지를 뒤집어쓴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구조 작업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압둘라만씨는 회계사다. 다른 지역 출신이지만 가족과 함께 카라만마라슈에 정착했다. 그는 행복하게 잠들었던 5일 밤의 안온한 공기와 향긋한 냄새부터 이야기했다. 여느 평범한 밤처럼, 그는 배우자(40)와 12살 딸을 품에 안고 누워 잠을 청했다. 6㎡ 크기의 방은 그에게 천국 같았다.
천국은 몇 시간 만에 영영 사라졌다. 암흑 속에 눈을 뜬 압둘라만씨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와 배우자, 딸의 몸을 무너진 건물 잔해가 짓누르고 있었다. 6일 새벽 4시 17분에 닥친 강진이 집을 순식간에 집어삼킨 것이었다. 영하의 기온과 칼바람을 막아줄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을 향해 뚫린 공간을 통해 비가 섞인 눈이 들이쳤다. 노출된 곳부터 몸이 젖기 시작했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3명 모두가 살아 있는 게 신의 선물로 느껴졌다.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잠든 압둘라만씨의 가족은 잔해에 깔려 있을 때도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였다. "한기가 심해질 때마다, 기절해서 잠들 것 같을 때마다 더 꽉 안았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도 정신을 놓지 않도록 서로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대변과 소변도 서로를 안은 상태에서 해결했다. 압둘라만씨는 "그런 것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시계도, 휴대전화도 없었던 탓에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 알 길이 없었다. 더는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칠 때쯤 구조대원의 발이 보였다. 압둘라만씨 가족은 그렇게 구조됐다. 매몰된 지 40시간 만의 일이었다. 압둘라만씨는 "딸이 가장 먼저 빠져나왔고, 그다음 아내가 나왔다"며 "아내와 딸이 구출되는 장면을 보면서 '아, 이제는 끝났다'는 생각에 그제서야 몸에 힘이 풀렸다"고 했다.
압둘라만씨는 지진으로 집, 차, 사무실 등 말 그대로 모든 재산을 잃었다. 휴대전화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는 "돈도, 물건도 필요 없다. 나에겐 가족이 있다. 가족이 살아 있으면 그걸로 된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다시 찾은 구조 현장은 끔찍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압둘라만씨는 그러나 꿋꿋이 현장을 지켰다. 압둘라만씨 가족의 집터 바로 옆 건물 잔해에 젊은 엄마와 아이 등 실종자 2명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내 이웃들이 나처럼 살아 있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가닿도록 가장 가까이에서 기도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내 말을 줄였다. 엄마와 아이가 보낼지도 모르는 희미한 구조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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