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별 특파원, 대지진 현장을 가다 <3신>
한국 긴급구호대의 튀르키예 구조현장 동행 취재
65세 여성, 4층 건물 붕괴 잔해에서 극적 구출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튀르키예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가 11일(현지시간) 남부 하타이에서 생존자 3명을 연달아 구조했다. 6일 새벽 최초 지진 발생 시점부터 130시간이나 지나 희망이 꺼져 가고 있을 때였다.
재해 현장에서 72시간은 '골든타임'으로 불린다. 그 이후로는 피해자가 살아 있을 확률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뜻이다. 한국일보가 11일 동행 취재한 구호 현장에서 그러나 골든타임은 무의미했다. 포기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구조대원들은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제 목숨을 걸고 뛰었다.
'최대 사망자' 하타이 향한 KDRT... 추가 붕괴 위험↑
튀르키예 정부 요청을 받고 7일 파견된 KDRT 소속 118명은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하타이주(州) 안타키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취재 허가를 받아 11일 구조 작업에 동행했다.
곳곳이 찢겨 있는 도로를 타고 가까스로 도착한 피해 현장은 초토화 상태였다. '파괴된 건물이 많다'보다는 '파괴되지 않은 건물이 거의 없다'는 표현이 들어맞았다. 이재민들은 어디선가 주워 온 이불을 길바닥에 깔고 지내고 있었다. KDRT 대원들도 한 고등학교 야외에 텐트를 치고 생활한다.
구조 현장엔 이재민과 구조대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들이 지천이었다. 반쯤 기운 건물들이 여기저기 위태롭게 서 있었다. 여진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무너져 또 다른 생명을 집어삼킬 것이었다. 11일 오후에도 규모 4.3의 여진이 인근 안타키아에서 발생했다.
"생존자가 있다" 현장 동행... 4시간 작업 끝 성공
11일은 최초 지진 발생 이후 닷새가 지난 날이었다. 생존자가 나올 가능성이 시시각각 떨어지고 있었지만, 구조대원들은 "그러니까 우리가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며 서로를 채근했다.
오전 10시 한 주민이 "생존자가 있는 것 같다"고 KDRT에 알렸다. 구조대원들은 신고 지역으로 황급히 이동했다. 한때 4개층이었다는 건물이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누군가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차마 믿기 어려워 보이는 건물 잔해 사이에서 생존 반응이 극적으로 감지됐다. 곧바로 구조 작업이 시작됐다. 튀르키예 구조대도 합류했다.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인 한국·튀르키예 합동 구조대가 현장에서 결성됐다.
생존자 구조는 영화에서처럼 '뚝딱' 되는 게 아니었다. 생존자를 짓누르는 콘크리트·시멘트 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망치, 펜치, 양동이 등의 도구가 끊임없이 공수됐다. 기력이 다한 생존자가 내는 소리를 듣고 매몰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구조대원들은 수시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럴 때면 모두가 숨 쉬는 것조차 멈췄다. 대원 1명이 휘파람을 불어 "조용히 하라"고 외치면 수십 미터 밖에 있는 굴삭기도 작업을 중단했다.
오전 11시 30분쯤 기적이 시작됐다. 한 여성의 신체 일부가 드러났다. 구조대원이 말을 걸었다. 다행히, 답이 돌아왔다.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눈에 보인다고 해서 바로 구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생존자는 예상보다 깊숙한 곳에 단단히 파묻혀 있었다. 속도를 내기도 어려웠다. 잔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은 충격도 생존자에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부동 자세로 갇혀 물조차 마시지 못한 데다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터라 언제든 쇼크가 올 수 있었다.
구조는 계속 지체됐다. "상반신이 다 나왔다", "생존자가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따뜻한 링거액을 맞고 있다" 같은 이야기에 희망을 걸 뿐이었다.
오후 2시쯤 환호성이 터졌다. 생존자가 마침내 세상에 다시 나왔다. 체온을 보호하는 용도인 은색 천에 온몸이 폭 싸인 채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구급차에 실렸다.
생존자는 65세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혼자 살아남았다. 남편은 사망했다. 구조 당시 여성은 남편의 시신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고 한다. KDRT는 남편의 시신도 수습했다.
구조 성공 후 꼭 끌어안은 한·튀르키예 구조대
한국 구조대원들은 생존자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는 모습을 본 뒤에야 웃었다. 조인재 소방관은 구급차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는 튀르키예 구조대원을 꽉 끌어안았다. 착잡한 미소가 조 소방관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생존자 1명을 구해냈다고 기뻐하기엔 주변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 처참해서였을 것이다.
양국 구조대는 더 많이 힘을 내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기념사진을 찍으며 생명을 구한 것을 자축했다. 그러나 오래 기뻐할 순 없었다. 이내 다른 구조 현장을 향해 흩어졌다.
KDRT는 11일 오후 2명의 생존자를 더 구했다. 엄마(51)와 아들(17)이었다. 오후 4시 2분 안타키아 재난당국에서 수색 요청을 접수받아 시작한 구조 작업은 오후 8시 18분 성공적으로 종료됐다. 이로써 11일 기준 KDRT가 튀르키예에서 구조한 생존자는 도착 당일 구조한 5명을 포함해 8명이 됐다.
KDRT가 해외에 파견된 건 9번째다. 2008년 중국 쓰촨성대지진 때부터 주요 재난 현장에 파견됐지만, 생존자를 구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대한민국을 지켜 준 나라, 튀르키예에서 얻은 성과이기에 더욱 값지다고 대원들은 말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한국 구조대를 향해 고마워하고 또 고마워했다. 수도 앙카라 근처 소도시에서 구호 활동을 하러 왔다는 벨키씨는 "한국이 우리를 많이 도와주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다 안다. 위험을 무릅쓰고 생존자를 구해 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무척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재민들에게 빵과 스프 등을 나눠 주던 자원봉사자에게 "KDRT가 오늘도 구조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려줬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기자에게 '믹스커피'를 타 주었다. 튀르키예인들을 대표해 한국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그의 애틋한 방식이었다.
하타이에서 나와 북쪽으로 향하는 도로에 진입하자 사이렌을 울리며 나란히 북쪽으로 내달리는 응급차가 적지 않게 보였다. 생존자가 타고 있을 것이었다. 골든타임을 훨씬 넘긴 시각에도 하타이에서는 그렇게 기적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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