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A씨는 상사 B씨 때문에 퇴사를 고려 중이다. B씨는 술을 마시면 A씨에게 "너같이 생긴 애는 노래방 가서도 만날 수 있다" "너, 나 좋아하냐?"고 말했고, 주변 사람에겐 "A가 자신을 꼬셨다"는 이야기도 했다. 심지어 A씨의 몸을 만지려 한 적도 있었다.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 A씨는 웃으며 그런 행동하지 말라고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최근 퇴근 후 B씨가 전화로 비슷한 말을 하길래 A씨는 별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날 거절했으니 내일부터 혹독하게 일하고 혼날 준비를 하라"는 협박이 돌아왔다.
직장인 10명 중 1명은 A씨처럼 직장에서 원치 않은 지속적 구애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통 고백은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거절하면 업무상 불이익을 받아 피해자는 이중으로 고통받아야 했다. '원치 않는 고백'을 직장 내 갑질, 성희롱 문제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애하고 거절하면 괴롭힘... "사내연애 금지 사내규칙 필요"
12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4~21일 직장인 1,000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원치 않는 구애를 지속적으로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11%가 '그렇다'고 답했다. 경험 비율은 여성(14.9%)이 남성(8.1%)보다, 고용 형태별로는 비정규직(13.8%)이 정규직(9.2%)보다 높았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9월부터 5개월간 직장 내 젠더폭력 제보를 받은 결과, 32건의 제보 중 25%(8건)가 '강압적 구애'였고,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원치 않는 구애는 보통 위계 관계에서 나타났다. 직장 상사나 사장이 호의를 베풀다 사적 만남을 요구하고, 추근대는 것이다. 피해자가 참다 못해 거절하면 업무상 괴롭힘이 시작되거나, 심하게는 회사를 그만두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회사에 다녔던 C씨는 "사장 아들이자 열다섯 살 차이가 나는 상사와 매일 점심 때 같이 밥을 먹어야 했고, '남자는 성욕이 본능'이라는 식의 불쾌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면서 "핑계를 대고 식사를 피하자 밤마다 전화가 걸려왔고, 업무 외 연락은 하지 말아달라 요청하자 '권고사직으로 처리할 테니 나가달라'고 통보했다"고 토로했다.
직장갑질119는 '강압적 구애'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봐야 한다며, 사규로 상사와 후임 간 사내 연애를 금지하는 것이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실제 2018년 미국에서 인사팀 직원 15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내 연애 관련 취업규칙이 있는 경우가 51%였고, 이 중 77%는 상사와 직속 후임 간의 교제를 금지하고 있었다.
김세정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직장 동료를 대상으로 한 '원치 않는 구애'는 근무환경을 악화시키고 일터까지 떠나게 하는 갑질"이라며 "신당역 살인사건처럼 스토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치 않는 구애가 낭만이 아닌 '구애 갑질'이라는 사회적 평가, 직장인 여성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조직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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