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별 특파원, 대지진 현장을 가다 <4신>
WHO "열악한 주거 환경, 2차 피해 우려"
주거지원 줄 잇지만... 75만 이재민엔 역부족
지진으로 거리에 나앉은 이재민이 튀르키예에만 75만 명이다. 집이 무너지지 않았어도 붕괴 위험 때문에 나와 살아야 하는 이들이 많다.
'운이 좋은' 이들은 임시천막을 먼저 배분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길바닥에 이불을 깔고 생활한다.
피해가 심한 지역일수록 생활은 더 열악하다. 흙먼지가 가득한 빵과 수프를 배급받아 허겁지겁 먹는다. 샤워는 꿈도 못 꾼다.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것도 이들에겐 사치다.
흙먼지 속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 "2차 피해 우려"
6일 새벽(현지시간) 발생한 지진의 영향권에 든 튀르키예 지역은 10개 주다. 튀르키예 정부는 "1만2,000채 이상의 건물이 붕괴하거나 심하게 파괴됐다"고 했다. 안전 문제로 비워 둔 건물도 약 11만 채다.
튀르키예기업연맹(튀르콘페드)은 주거용 건물에 발생한 피해만 708억 달러(89조8,000억 원)라고 발표했다. 부실한 자재를 사용해 졸속으로 지어진 건물이 태반이라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한국일보는 피해가 가장 큰 하타이, 카라만마라슈, 가지안테프, 아다나주를 8일부터 취재했다. 이재민들의 생활은 처참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임시천막은 이재민 숫자를 감당하기엔 한참 모자란다. 이재민 대부분이 길거리에서 지낸다.
하타이주 안타키아에서는 이재민들이 구조 작업용 중장비가 다니는 거리 한복판에서 아무런 보호막 없이 자고 있었다.
실내 운동장 등 사람들을 많이 수용한 곳엔 그나마 급수 시설이 설치됐다. 그러나 손 아닌 신체를 씻는 건 대부분 금지돼 있다. 가족들의 구출 소식을 기다리느라 구조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사정은 훨씬 열악하다.
마음 편히 대소변을 보는 것도 사치다. 안타키아에서 화장실을 찾는 기자에게 자원봉사자가 가리킨 곳엔 세면대는커녕 변기조차 없었다.
식량을 비롯한 구호 물품이 속속 도착했지만, 예외 없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먼지 묻은 빵을 날리는 먼지 속에서 먹었다. 건물 잔해를 뒤져 베개, 이불, 주전자, 옷 등을 찾아내 사용했다.
노인, 아이 같은 약자들의 건강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많은 생존자가 끔찍한 여건에서 야외에 머무르고 있다.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했다.
"내 집이라도 나누겠다" 온정 잇따르지만
다행히 국제사회의 '주거 지원'이 느리게 진행 중이다. 카타르는 이동식 주택 1만 채를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주겠다고 약속했다. 카자흐스탄도 140채 공급을 발표했다. 기업들도 기부를 시작했다. 튀르키예 방위산업체 바이카르는 "1,000채의 컨테이너 주택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피해를 입지 않은 튀르키예인들은 공간을 기꺼이 나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머무를 곳이 있으니 언제든 연락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전화번호가 적힌 글이 매일 올라온다. 지진 피해가 미치지 않은 튀르키예 최북단 삼순에 사는 소네어 마치트씨는 한국일보에 "내 집을 나누겠다. 그들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머무르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75만 명을 편히 쉬게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1년 안에 주택을 전부 복구하겠다"고 했지만, 비극의 현장에서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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