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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시 동물은 도망가지도 못해... 법적 장치 마련해야"

입력
2023.02.17 11:00
수정
2023.02.1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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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청원' 공감에 답합니다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 시절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말 못 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운영합니다.


2017년 충북 진천군의 한 축사에 불이 나 소방관이 불을 끄고 있다(왼쪽 사진). 강원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많은 농장의 갖축과 반려동물이 부상하거나 목숨을 잃었다. 오른쪽 사진은 화재가 번진 속초시 장천마을 축사에서 어미소가 송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 고성=연합뉴스

2017년 충북 진천군의 한 축사에 불이 나 소방관이 불을 끄고 있다(왼쪽 사진). 강원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많은 농장의 갖축과 반려동물이 부상하거나 목숨을 잃었다. 오른쪽 사진은 화재가 번진 속초시 장천마을 축사에서 어미소가 송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 고성=연합뉴스

"동물원에는 소방시설 필요 없다? 화재 시 동물도 보호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보도(2월 10일)한 애니청원에 포털사이트와 한국일보닷컴,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동자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감해 주신 분이 944명에 달했습니다.

동물원이나 축사의 경우 화재 시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길 바라는 '오빵이'(번식장에서 구조된 포메라니안)의 청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해 주셨는데요.

해당 청원을 보고 관련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인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개정 준비 상황을 물었습니다. 소방시설법을 담당하는 소방청으로부터 앞으로 개선 가능성을 들어봤습니다. 소방시설법 문제를 지적한 동자연과 한재언 동자연 법률지원센터 변호사가 문제 제기 배경과 개선 방향을 설명해드립니다.

청원 취지에 공감, 동물보호법·소방시설법 동시 개정 준비 중

2019년 강원 고성군 토성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진 속초시 장천마을에서 화재로 반이 무너진 축사에서 살아남은 소가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속초=연합뉴스

2019년 강원 고성군 토성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진 속초시 장천마을에서 화재로 반이 무너진 축사에서 살아남은 소가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속초=연합뉴스

-어떤 내용으로 법안 개정을 준비 중인가요.

"청원 취지에 공감하며 ①동물보호법 개정 ②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 시행령 개정을 정부에 촉구 ③소방시설법 시행령의 해당 내용을 법으로 상향해 개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했습니다. 국회 법제실을 통해 소방청에 동물보호를 위한 화재시설 설치 시행령 개정을 우선 요청했으나, 소방청에서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고 있어 동물보호법과 소방시설법 개정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하 윤관석 의원실)

-동물보호법과 소방시설법 개정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나요.

"동물보호법에는 동물을 사육·관리 또는 보호하는 공간에 소화기구를 비치하거나 소방에 필요한 설비를 설치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소방시설법의 경우 과거 농민단체 등의 반대로 축사의 소방시설 설치 의무화가 진행됐다 철회된 바 있어 법안 통과의 신속성을 고려해 동식물원으로 한정해 우선 추진할 예정입니다."

동물 빨리 대피할 수 있도록 관리자 교육 훈련필요


2017년 허가된 번식장에 화재가 발생(왼쪽 사진)해 많은 동물이 희생된 가운데 다행히 구조된 오빵이. 동물자유연대 제공

2017년 허가된 번식장에 화재가 발생(왼쪽 사진)해 많은 동물이 희생된 가운데 다행히 구조된 오빵이. 동물자유연대 제공

-소방시설법 시행령을 보면 스프링클러 설비의 경우, 동물원이나 축사가 설치 의무에서 제외됐는데 이유는 뭔가요. 또 옥내 소화전 설비 역시 축사는 제외되어 있는데요.

"스프링클러워낙 고가 설비이므로 피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병원, 공장 등에만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곳까지 대상을 확대하자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축사 내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적이 있지만 분뇨, 습기 등으로 부식돼 설비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어 제외된 상황입니다." (이하 소방청 소방분석제도과)

-화재 발생 시 동물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요.

"화재 발생 시 소나 돼지 등 축사에 있는 동물들은 몸이 뜨거워져도 도망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는 특성이 있습니다. 축사 내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해서입니다. 화재 시 대피방법이나 요령을 동물원 관리자나 축사 운영자가 평소 숙지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소방시설법은 사람 위주… 동물 위한 안전시설 기준도 상향돼야"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주동물원 아쿠아리움에서 화재가 발생해 어류 수십 마리가 폐사했다. 전북도소방본부 제공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주동물원 아쿠아리움에서 화재가 발생해 어류 수십 마리가 폐사했다. 전북도소방본부 제공

-소방시설법 문제 제기를 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해마다 동물 관련 시설에 화재가 발생하고, 수많은 동물이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확인을 해보니 동물 관련 시설은 화재 예방을 위한 설비 의무에서 배제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개선이 시급하다 판단했습니다." (이하 정진아 동자연 사회변화팀장)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은요.

"동물사육 시설에 소방시설 설치 의무가 제외된 것은 해당 법안이 사람의 안전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데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제 개편이 필요합니다. 법안 시행 시 유예기간을 두고 피해 규모가 큰 대형 시설이나 노후돼 화재 위험이 높은 시설을 우선 개선토록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시설설비를 갖추는 게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화재로 인한 피해가 더 큽니다."

-허가 번식장의 경우 관련 법이 있음에도 관리가 안 되고 있습니다.

"번식장 등은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 관련 영업별 시설 및 인력 기준으로 화재 예방 조치를 시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소방시설법에 근거해 설치토록 되어 있어 기준이 매우 느슨합니다. 또 이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영업장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화재 시 동물은 도망 못 가... 소화설비라도 최대한 갖춰야


올해 1월 경북 구미시 남통동의 한 놀이공원 실내동물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시설 일부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 이 불로 동물사육시설로 사용하던 비닐하우스 7동이 불타고 토끼, 앵무새, 햄스터와 어류 등 동물 39종 100여 마리가 폐사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올해 1월 경북 구미시 남통동의 한 놀이공원 실내동물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시설 일부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 이 불로 동물사육시설로 사용하던 비닐하우스 7동이 불타고 토끼, 앵무새, 햄스터와 어류 등 동물 39종 100여 마리가 폐사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소방시설법에는 동물을 위한 조치가 없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소방시설법 제1조를 보면 보호대상은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입니다. 현행법 상 동물은 재산에 불과하므로 재산으로서의 동물을 보호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소방시설 설치 비용이 동물의 경제적 가치보다 크다면 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는 게 합리적인 것이죠. 다만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시대이며 정부가 동물의 복지를 향상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만큼 소방시설과 같은 안전시설 역시 이에 부합하게 향상되어야 합니다." (이하 한재언 변호사)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요.

"소방시설은 크게 소화설비, 경보설비, 피난구조설비, 소화용수설비, 소화활동설비로 나뉩니다. 동물에 대해 전체 소방시설을 사람에 준해서 설치하라는 건 경제적인 측면에서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청원에서도 지적했듯 동물은 화재가 나도 도망갈 수 없는 시설에서 살기 때문에 화재를 조기에 진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소화설비라도 최대한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소방시설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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