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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도가 된 나의 연인이 테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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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도가 된 나의 연인이 테러를 벌였다

입력
2023.02.20 15:15
수정
2023.02.20 18:2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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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작가 권오경 '인센디어리스'
"신앙 잃고 무신론자와의 간극 체감"
미국 내 이민자의 삶도 작품 곳곳에
애플TV+ '파친코' 감독, 드라마화 결정

권오경 작가 © Smeeta Mahanti 문학과지성사 제공

권오경 작가 © Smeeta Mahanti 문학과지성사 제공

3분, 2분, 1분. "연기가 신의 숨결처럼" 솟아오르며 산부인과 병원 건물이 무너진다. 근처 건물 옥상에서 폭발 장면을 바라보던 한 무리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른다. 그 안에는 내 연인이 있다.

소설 '인센디어리스'의 첫 장면이다. 주인공 '윌'이 참혹한 테러의 순간을 머릿속으로 재구성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는 임신중지(낙태)를 죄악으로 여기는 이들이 신의 이름으로 자행한 범죄다. 벌어진 사건을 믿을 수 없었던 윌. 뒤늦게 자신의 연인('피비')이 광신도, 테러리스트가 되기까지 여정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그 시선은 상실과 종교, 그리고 근본적인 인간성 내부로 깊이 파고든다.

한국계 미국인 권오경 작가는 이 데뷔작으로 2018년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에 올랐다. 종교, 테러, 낙태 등 무거운 주제를 흡입력 있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한국어판을 낸 작가는 한국 언론과의 온라인 간담회에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종교적인 이유로 세계관이 너무나 다르다면 어떨까'란 질문에서 출발한 소설"이라고 밝혔다. 어머니를 잃고 사이비 종교에 빠진 피비와 신학대에 입학했지만 결국 종교를 포기한 윌. 각자의 상실을 경험한 둘이 사랑에 빠지고, 신앙인과 무신론자의 세계가 부딪히는 지점을 집요하게 그렸다. 무엇보다 심리 묘사가 빼어나다. 피비와 윌, 그리고 사이비 교주인 존 릴. 세 인물이 권 작가의 각기 다른 부분을 닮아서, 인물 표현이 더 탁월했는지 모른다.

목사를 꿈꿨을 정도로 독실했던 작가는 17세 때 신앙을 버렸다. 여러 책을 통해 다양한 신념을 접하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의 유일성을 믿기 어려워졌기 때문. '영원히 살 것'이라 믿다가 '사람이 죽으면 흙, 먼지 알갱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세계관의 변화는 그가 인생에서 겪은 "가장 큰 상실이자 슬픔"이었다. 신앙인과 무신론자와의 간극을 체감한 계기도 됐다. "충돌하는 세계관 속 갈등을 보여주기 위해" 세 인물의 시점을 교차로 보여준 서사 방식도 독자의 이해를 높인다.

인센디어리스·권오경 지음·김지현 옮김·문학과지성사 발행·320쪽·1만6,000원

인센디어리스·권오경 지음·김지현 옮김·문학과지성사 발행·320쪽·1만6,000원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권오경에게 '아시아계' '여성' '이민자'는 매우 중요한 정체성이다. 소설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모범생이었던 한국계 이민자 피비의 존재부터 그렇다. 현실에선 한국계 작가가 거의 없다는 두려움에 작가의 꿈을 접기도 했다(그는 예일대 경제학과를 졸업해 금융권에서 잠시 일했다). 작가는 지금도 공식 석상에서는 눈가에 진한 아이섀도를 그린다. "아시아계 여성은 약하고 순종적이리란 편견에 맞서는 나만의 방식이에요."

소설의 영상화 소식은 그래서 더 뜻깊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지난 5년간 한국 콘텐츠가 '아시아계 이야기나 인물은 인기가 없다'는 할리우드의 인식이 틀렸다는 걸 증명했다"면서 "이 작품의 영상화는 정치적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차기작은 작가의 성소수자로서 정체성과 밀접하다. 발레리나와 여성 사진작가의 사랑과 야망을 다룬 퀴어소설이다. 여성이 언제나 누군가의 엄마, 딸, 자매로서 역할을 압박받는 상황에 대한 의문을 소설로 풀어냈다. "책이 곧 사원이에요. 책을 읽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요. 문학은 외로움을 치유하는 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소설 쓰기는 책 너머 동지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인 셈이다.

진달래 기자
유종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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