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다<18>경남 통영 욕지도
156개 부속섬 거느린 그림 같은 풍경
통영항에서 여객선으로 1시간이면 닿아
국내 최대 고등어 양식장 즐비
황토서 자란 고구마도 주민들 주소득원
24㎞ 해안도로 굽이굽이 절경 뽐내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경남 통영시 욕지(欲知)도는 한자 뜻대로 알면 알수록 궁금증이 생기는 섬이다. 특이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도 구경이 쉽지 않은 활고등어가 펄떡거리고, 황토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고구마가 달콤한 향을 뽐낸다. 맛과 향에 취해 24㎞ 길이의 해안도로에 접어들면, 흔히 볼 수 없는 비경이 곳곳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섬이 욕지도다.
욕지도는 통영항에서 남서쪽으로 뱃길을 따라 32㎞ 떨어진 한려해상국립공원 한가운데 별처럼 흩어져 있는 10개 유인도와 146개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다. 면적만 서울 여의도(2.9㎢)의 4배가 넘는 12.619㎢다. 3,348개의 우리나라 섬 중 48번째로 크다. 그림 같은 풍광과 다양한 특산물로 해마다 주민 수(약 2,000명)의 150배가 넘는 3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사계절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부산서도 보기 힘든 활고등어가 펄떡
지난 15일 오전 10시 통영시 산양읍 삼덕항을 출항한 여객선이 55분 만에 욕지면 동항리 욕지항에 다다랐다. 배에서 내리자 큼지막한 원형 수족관에 등 푸른 고등어가 이어달리기 하듯 빙글빙글 돌고 있는 횟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등어 집산지 부산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살아 있는 고등어였다. 부둣가 옆을 따라 이어지는 좌판 고무대야에도 펄떡거리는 활고등어가 가득 차 있었다. 고등어를 팔고 있던 배복선(70)씨는 “즉석에서 뜨는 고등어회는 욕지도서만 맛볼 수 있는 명물 중 명물”이라며 “부산이나 통영에서 맛볼 수 있는 고등어회도 욕지 고등어”라고 말했다.
남해 한가운데 한류와 난류 교차 지점에 있는 욕지도는 예로부터 고등어를 비롯해 다양한 물고기가 잡히는 손꼽히는 어장으로 통했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에도 욕지도 주민들은 집집마다 소금에 절여 보관한 고등어를 ‘간독’에 넉넉히 넣어둘 정도였다. 한때 통영 인구 절반이 욕지도에 살 정도로 부촌이 욕지도였다. 김민철 욕지면장은 “우리나라 섬 중에 최초로 자가발전소가 들어섰고, 1969년 자석식 전화가 가장 먼저 들어왔을 정도로 늘 풍족했던 섬”이라며 “호젓하고 아름다운 섬의 정취만큼 주민들 인심 또한 넉넉한 섬”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최신식 어업기술로 무장한 일본 어선들이 욕지 어장까지 들어와 남획을 일삼으면서 간독에 가득 찬 염장 고등어도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씨가 말라가던 욕지도에 다시 고등어가 몰리기 시작한 건 1976년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고등어 양식에 성공하면서 양식장이 욕지도 앞바다에 조성되기 시작했다.
양식 기술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욕지도 앞바다에서는 오륜기 모양의 거대한 고등어 양식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주민들은 "고등어와 같은 붉은 살 생선은 유산소운동에 적합한 적색근육으로 이뤄져 계속 헤엄치지 않으면 호흡이 멈춘다"면서 "양식 기술 발달도 그물에 걸리자마자 죽는 고등어를 활어회로 맛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황토 고구마밭 끝없이 펼쳐지는 섬
욕지도에서 가장 높은 해발 392m의 천왕봉 비탈에는 경작을 위해 갈아 놓은 붉은색 밭이 펼쳐져 있다. 고등어와 비견될 정도로 육지도의 명물로 꼽히는 고구마가 해풍을 맞으면서 자라는 밭이다. 과일에 소량의 소금을 뿌리면 단맛이 강해지듯, 염분을 머금고 자라 당도가 높은 게 욕지도 고구마의 특징이다. 물이 잘 빠지는 비탈진 황토에서 한여름 뜨거운 햇살까지 받아 식감도 포슬포슬하다. 달콤한 욕지도 고구마는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 수확철인 매년 7월 중순이 되면 눈 깜짝할 새 팔려 나간다. 고등어와 함께 욕지도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이다.
최근에는 욕지도 고구마를 이용한 고구마라떼와 말린 고구마를 얇게 썰어 끓인 빼떼기죽도 인기다. 라떼와 죽을 파는 '욕지도 할매바리스타’는 14명 할머니들의 마을기업이라는 사실까지 회자되면서, 욕지도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됐다. 고구마 도넛을 만들어 팔던 카페도 통영항에 분점까지 냈을 정도로 성황이다.
1967년 시험재배를 시작한 욕지도 감귤도 제주도보다 두 배 이상 비싸게 팔려 나갈 정도로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연중 온화한 기온과 높은 일조량에 유기질이 풍부한 토양까지 감귤 재배의 최적지로 꼽힌다. 40년 넘게 감귤 농사를 지은 조두제(85)씨는 “노지서 키워 생긴 건 우글쭈글해도 새콤달콤한 맛이 강해 한 번 맛을 본 손님은 반드시 다시 찾는다”며 “농약을 적게 쳐 귤 껍질이 빨리 상하지 않아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화가 이중섭도 홀린 그림 같은 섬
156개의 부속섬을 거느린 섬답게 욕지도는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풍광이 일품이다. 섬의 정남쪽 도로변에 위치한 새천년기념공원에 들어서면, 부리가 긴 펠리컨이 바다를 향해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펠리컨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 700m가량 이동하면, 욕지 비경으로 꼽히는 삼여도가 자태를 드러낸다. 세 여인이란 뜻의 삼여도는 용왕의 세 딸이 총각으로 변신한 이무기를 서로 사모했다가 사실을 알게 된 용왕이 노해 세 딸을 바위로 변하게 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섬 둘레 벼랑을 따라 걷는 비렁길에서 보이는 풍경도 굽이굽이 절경을 뽐낸다. 비렁길 사이 수직절벽을 잇는 출렁다리를 건너자, 마당같이 넓어 이름 붙여진 평평한 마당바위 양쪽으로 파도와 바람에 깎인 침식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낙조와 노을이 아름다워 ‘석양이 아름다운 쉼터’라고 이름 붙여진 공원에는 서산리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몰에 정신을 팔다 보면 어둠이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1953년 친구를 따라 욕지도에 왔다가 섬 풍광에 반한 화가 이중섭은 욕지항 여객선터미널 바로 옆에 보이는 모밀잣밤나무 숲을 그렸다. 지금은 덱(deck)이 마련돼 산림욕을 즐기며 가볍게 산책하기 안성맞춤이다. 좌부랑개마을은 욕지도가 가장 번화했던 1900년대 일제강점기 어촌 모습을 재현한 노천 박물관이다. 당시 목욕탕과 당구장, 우체국 등을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조성해 욕지도의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통영시는 욕지도를 찾는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해안도로 전망대 등 관광명소를 중심으로 시설물 안전 유지에 주력하고 있다. 김명국 통영시 섬개발 팀장은 “마을 안쪽 도로 중 차량 양방향 통행에 무리가 있는 일부 구간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며 “관광객과 주민 모두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섬으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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