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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사랑은 비밀번호 공유다(Love Is Sharing a Password).'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한때 트위터에 올려 화제가 됐던 문구다. 넷플릭스 계정 공유로 사랑과 우정을 다지라는 의미가 담겼다. 계정 공유를 발판 삼아 가입자를 늘리고 싶었던 넷플릭스의 속내가 반영됐다. 넷플릭스 설립자 겸 전 최고경영책임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사람들이 넷플릭스를 공유하는 걸 사랑한다”고 2016년 말하기도 했다.
□ 계정 공유는 넷플릭스를 급성장하게 한 동력 중 하나다. 넷플릭스 ‘스탠다드’ 요금제(월 1만3,500원) 기준 가입자는 별도 아이디 4개를 만들 수 있다. 친구 넷이 의기투합하면 한 달에 3,400원가량씩 내고 ‘동영상의 바다’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이용자들이 소액을 내고 하루씩 계정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얌체 업체가 국내에서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계정 공유는 OTT만이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서비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최근 계정 공유 제한에 나서 반발을 사고 있다.
□ 계정 공유 제한은 수익성 악화와 관련 깊다. 넷플릭스 전 세계 가입 계정 수는 2억3,100만 개로 최근 증가세가 더디다. 디즈니플러스와 HBO맥스, 애플TV플러스 등 경쟁 업체가 등장해 수익성에 악영향을 끼쳤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알루마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지난해만 계정 공유로 91억 달러를 손해 봤다(디즈니플러스는 30억 달러). 지난해 유럽연합(EU) 지식재산청이 OTT 무료 계정 공유를 저작권법 위배라고 규정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 넷플릭스는 추가 아이디 유료화로 계정 공유를 제한하려 한다. 지난해 칠레와 페루, 코스타리카에서 시범 실시한 후 이달 캐나다와 뉴질랜드, 스페인, 포르투갈로 적용 국가를 넓혔다. 국내에서도 상반기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 국내 가입자들의 이탈은 불가피하다. 넷플릭스는 ‘유료 계정 공유’라 주장하나 계정 공유는 사실상 사라지는 셈이다. 극장과 TV를 위기로 몰아넣으며 OTT 전성시대를 열었던 ‘플랫폼 전쟁’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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