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통신 3사 과점시장 정조준
과기정통부, 요금제 다양화·제4 이통사 유도
공정위, 요금제 담합·알뜰폰 차별 점검
통신업계, 긴장하면서도 "인기관리" 반발
윤석열 정부가 국민 생활비 부담 주범으로 '통신비'를 지목하면서 정부와 통신사들이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통신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정책 목표를 바탕으로 통신사들의 요금제부터 이용 약관, 스마트폰 단말기 유통 구조까지 대대적으로 점검하며 압박에 나섰다. 통신사들은 바짝 긴장하면서도 "만만한 것이 통신사냐"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 전방위적 통신시장 구조 개선 움직임
22일 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통신시장 구조개선 움직임은 역대 정부 정책 중에서도 가장 넓은 범위에서 공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선 제4 이동통신사 논의가 시작됐지만, 성과는 없었다. 박근혜 정부에선 휴대폰 보조금 경쟁을 막기 위해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17년 선택약정 할인율을 20%에서 25%로 올렸다. 선택 약정은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을 살 때 기기할인 대신 통신비를 깎을 수 있는 제도다.
큰 틀에서 통신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 움직임은 이어졌지만 정부가 통신사들의 요금제 설계부터 약관 구성, 제4 이통사 진입, 단말기 유통 구조까지 전체를 들여다볼 정도의 규제 움직임은 없었다는 설명. 특히나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의 통신비 인하 공약이 없었기 때문에 통신업계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정부는 2002년부터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통신 3사가 시장을 과점하면서 서비스 혁신은 뒤처지고 소비자에게 불리한 요금제가 만들어졌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한 가계의 통신비 지출액은 평균 13만1,000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2.8%가량 상승했다. 정부가 통신시장 과점 구조 해체를 통신비 부담 완화의 첫 단추로 여기는 이유다. 드러내진 않지만 1년에 4조 원씩 영업이익을 얻는 통신 3사 수익을 줄이고 통신비 부담을 낮추라는 의지도 읽힌다.
과기정통부는 ①요금제 다양화 ②제4 이통사 진입을 목표로 '통신시장 경쟁촉진 정책방안 TF(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TF는 분과별 토의를 상시적으로 진행하고, 한 달에 한 번 전체 회의를 열 계획이다. 통신 3사 5세대(5G) 이동통신 요금제가 설치되지 않은 데이터 제공량 40~100GB 구간에 신규 요금제 도입을 유도하고 있다.
또 28기가헤르츠(㎓) 대역 5G 주파수를 받아갈 신규 사업자를 유치하기 위해 주파수 가격 인하를 고려하고 있다. 제4 이통사로는 일본의 제4 이통사 '라쿠텐 모바일'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자본력이 튼튼한 대기업이면서 기존 사업과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롯데·네이버·신세계 등 유통,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후보군으로 주목받고 있다.(관련 기사 ☞ 본지 2월 17일자 13년 동안 실패한 제4 이통사, '한국판 라쿠텐' 실현될까…정부는 '기업 순회 만남' 준비)
공정위도 칼을 빼들었다. 통신 3사의 천편일률적 요금제에 담합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휴대폰 단말기 유통 구조도 뜯어본다. '2시간 이상 통신장애만 배상한다'는 통신 3사 이용약관도 문제가 없는지 살핀다. 해당 약관은 2021년 KT 인터넷망 마비 사태와 올해 LG유플러스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으로 인한 인터넷 장애 사태 당시 소비자들의 피해 구제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비판받았다. 공정위가 단순히 요금제 담합이 아닌 휴대폰 유통구조 전체를 분석하려는 만큼 통신시장 규제 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통신업계 긴장 속 불만 팽배
통신사들은 정부의 강경한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겉으로는 "정부와 협의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통신비 결정이나 이용약관 개정은 기업이 자율적 판단으로 해야 한다"며 "통신 3사는 주주가 주인인 주식회사인데 정부가 특정 요금제를 강제하거나 약관 구성에 개입하는 것은 주식회사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통신사 관계자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통신 분야에 어떤 정책적 목표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통신비라는 단어가 국민에게 잘 먹히니 인기 관리를 위해 일단 때리고 보는 것 같다"고 물음표를 달았다.
시민사회와 전문가들도 정부의 정책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언뜻 강도 높은 정책 움직임으로 보이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김주호 참여연대 금융경제센터 팀장은 "5G 중간요금제도 중요하지만 데이터 10GB 미만을 사용하는 소비자도 많다"며 "단순히 중간요금제 숫자만 늘리는 것은 정책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데이터 제공량은 적더라도 가격은 싼 요금제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형택 동국대 교수 역시 "정부가 제4 이통사 진입을 유도하거나 인위적으로 시장구조를 바꾸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통신사가 정부에 요금제를 신고할 때 정부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합리적 요금제인지 제대로 감독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을 내놓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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