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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돕는 신부님 늘었어요"

입력
2023.03.03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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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천주교 신자 돕는 '아르쿠스'
이전수 공동대표 "연대하는 사제들 늘어"

편집자주

책, 소설, 영화, 드라마, 가요, 연극, 미술 등 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젠더 이슈를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 봅니다.

이흔관 예수회 신부가 20일 서울 장충동 성소수자 부모모임 사무실에서 미사를 열고 강론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이흔관 예수회 신부가 20일 서울 장충동 성소수자 부모모임 사무실에서 미사를 열고 강론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지난달 20일 서울 장충동 성소수자 부모모임 사무실. 천주교내 성소수자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아르쿠스가 계획한 월례미사가 예정된 오후 7시가 가까워지자 미사 참석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성소수자와 그 부모, 또는 그들의 신앙생활을 응원하는 사람들이다. 성소수자 신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모임에 참여한 수도자들도 있었다. 아르쿠스의 소개로 이날 처음 모임에 참석한 이흔관 예수회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동안, 신자들은 성소수자가 아닌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전례서를 따라서 기도했다. 이 신부는 이날 강론에서 “세상이 바뀌면 교리가 발전하지 않습니까? 교리가 변한다는 말은 잘 안 씁니다만 발전한다는 표현은 좀 쓰는 것 같습니다. 상황에 맞춰서 변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아르쿠스는 라틴어로 ‘무지개’를 뜻한다. 지난해 5월 설립된 단체로 성소수자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그들과 성소수자가 아닌 신자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한다. 성소수자들이 교회 안에서 알게 모르게 차별받는 현실을 개선해보고자 평신도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지난해 9월부터 성소수자 부모모임 사무실에서 성소수자들이 마음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월례미사를 매달 1회씩 진행 중이다. 서울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서 성소수자 신자들의 존재와 입장을 알리기도 했다. 지난달 27일에는 변희수 하사 2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천주교의 장례 의식인 연도를 진행했다.


지난 20일 서울 장충동 성소수자 부모모임 사무실에서 열린 미사에서 신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지난 20일 서울 장충동 성소수자 부모모임 사무실에서 열린 미사에서 신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이전수 아르쿠스 공동대표는 “교회 안에서 성소수자 신자들을 돕고 싶어도 분위기 때문에 나서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아르쿠스를 구심점으로 삼고 싶다"며 “무엇보다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신앙을 잃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단체 설립 이유를 밝혔다.

천주교 교리는 동성애 성향을 ‘객관적 무질서’로 규정한다. 동성간 성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정할 수 없다고 천명한다. 때문에 천주교 내부에도 동성애를 ‘죄’로 설명하는 사제가 있다. 이 대표는 “아르쿠스 미사에 와서 교회 안에서 겪는 어려움, 차별을 이야기하는 성소수자들이 많다”면서 “신부들이 신자 가운데 성소수자가 있는지 모르고 강론에서 ‘동성애는 죄악이다, 죄인이다, 정신병이다’ 이야기할 때 신자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라고 설명했다. 한 20대 성소수자는 이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대전에서 왔다면서 “대전교구에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는 신부나 수녀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런 신부님, 수녀님을 내려주십사 기도하고 있다”면서 웃었다.

느리지만 분위기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당장 아르쿠스의 주선으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들이 증가하고 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홍정선 대표는 “미사에 와보고 싶어하는 신부들이 줄을 섰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아르쿠스에 연대해주는 신부들이 초창기에는 2명 정도였는데 현재는 8명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날 미사에 찾아온 수녀 4명 가운데 3명도 처음으로 현장을 찾은 경우였다. 한 수녀는 "수녀원에서 수녀들이 함께 성소수자 신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열심히 공부했다"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지 않은 수녀들도 있지만 반대 경우도 많았다"고 미사에 참석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대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의 비판에 대해서 “종교도 정체성을 구성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말은 성소수자에게 정체성을 버리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면서 “앞으로도 교회 안에서 성소수자의 어려움을 알리고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없애는 방향으로 활동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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