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임금체계 개편책으론 해소 어려워
노사관계·산업구조 두루 살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고용노동부 상생임금위원회는 정부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방안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는 기구다. 공동위원장인 이정식 장관과 이재열 서울대 교수가 지난 2일 위원회 발족식에서 했던 모두발언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편의상 문장마다 부호를 붙였다).
ⓐ우리 노동시장은 노동법제와 사회안전망으로 보호받는 대기업·정규직 12%와 보호에서 배제된 중소기업·비정규직 88%의 이중구조다. 임금은 물론 근로환경과 복지의 격차가 크다.
ⓑ주된 원인은 대기업과 정규직 노조의 하청·비정규직에 대한 상생 인식과 성과 공유 부족 때문이다.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임금격차 해소로 이중구조를 해소하겠다.
ⓐ의 상황 인식은 다들 공감하는 바다. 대기업 정규직은 평균적으로 중소기업 비정규직에 비해 임금이 2배 이상 많고 근속 기간은 2.3배 길고 국민연금 가입률도 1.5배 높다. 개인 간, 산업 간 생산성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용인하기 어려운 차이로, 이런 양극화는 사회 통합과 발전에 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에서 ⓑ로, 현실 진단에서 원인 분석으로 넘어가면서 위원회 논리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하청(중소기업) 근로자의 저임금은 근본적으로 원청(대기업)에서 받는 돈이 넉넉지 않아서다. 때론 불공정 거래를 동원해 하청 대금을 후려치는 원청의 횡포는 익히 알려진 바다. 이런 악덕 기업 옆에, 임금 올려달라는 노조를 나란히 놓아도 되나. "대기업·정규직 노조가 기득권 보호에 집중해 노동시장 격차를 더욱 고착화한다"는 위원회 분석에 일리가 없진 않지만, 하청 근로자 몫을 억지로 뺏는 게 아닌 한에야 노조의 정당한 권리인 임금교섭을 부당거래 취급하는 건 영 어색하다. 원하청 공정거래 확립, 하청 노사 간 중간착취 근절이 훨씬 시급한 문제 아닌가.
해법으로 ⓒ가 제시된 것도 명쾌하지 않다. 대기업에 충분한 성과 공유를 주문하는 건 다른 경제부처 소관이라 위원회는 임금체계 개편만 언급했다고 치자. 하지만 노조가 있는 대기업이 주로 택하는 호봉급을 직무·성과급으로 바꾼다고 근로자 간 상생이 절로 이뤄질까. 원청이 그렇게 아낀 장기근속자 인건비로 하청 대금을 충분히 지급할 거란 보장이 있나. 하청은 과연 늘어난 수입을 온전히 근로자 임금 보전에 쓸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격언은 임금체계에도 적용된다. 지난해 미국 코넬대와 연세대 연구팀이 국내 직무급 시행 대기업을 실증 분석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직무급 도입 이후 일반직·정규직과 현장직·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오히려 커졌고 연공성 완화 효과도 일반직·정규직에서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 기득권'이라 할 만한 이들이 관리자급 직무를 세세하게 쪼개 높은 임금을 책정했기 때문이다.
위원회의 허술한 논리를 메울 보완책은 스스로 ⓐ에서 지적했다시피 저임금 취약 근로자를 '노동법제와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노조 조직률(2021년 기준)은 선진국 대비 한참 낮은 14.2%이고, 그마저도 중소기업은 30~99명 사업장 1.6%, 30명 미만 0.2%에 불과해 임금 교섭이 어려운 구조다. 이런 곳에 노조 포함 근로자대표제를 활성화해 근로자가 정당하게 제 몫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게 정공법이다.
임금 격차를 보다 '거국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 원하청 관계, 노조 유무에 매인 시야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국내 임금 격차가 장기적(2009~21년)으로 같은 산업 내에선 줄어든 반면 산업 간에는 크게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근로자가 고임금 산업으로 원활히 이동할 수 있게끔 고용정책을 펴는 것이 이중구조에 특효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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