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가득하면 차를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3.50%인 현 수준에서 동결했다. 이로써 지난해 4월부터 7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 행진이 멈췄다. 그동안 금리가 빠르게 올라가면서 서민들 이자 부담과 금융 불안정성 등이 커지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무엇보다 수출 부진, 소비 회복세 약화 등 경기 침체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정부는 최근 경기 둔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까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 총재는 이번 동결을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통화 정책의 방향을 완화로 전환하기에는 곳곳에 물가 불안 요인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 3월과 5월 계속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더 벌어질 경우 원화 가치 하락이 이어지며 수입 물가가 더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공공요금 등 각종 물가 인상 요인까지 겹치면 불황 속에서 물가마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덫에 빠지게 된다.
‘경기 침체를 막느냐, 물가 안정을 중시하느냐.’ 갈림길에 선 이 총재는 “더 중요한 것은 금리 인상을 통해 가길 원하는 물가 경로”라고 밝혔다. 이어 “3월부터 물가 상승률이 4%대로 낮아지고, 그 추세가 이어져 연말 3%대 초반까지 내려간다면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의식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3월까지 물가 움직임을 주시한 후 여전히 5%대에 머무른다면 다시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메시지다.
한은이 제시한 안정적 물가 경로에 진입하려면, 정부를 비롯한 모든 경제 주체도 부양책 추진을 조금 더 자제하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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