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 ①-4]
초등교사들이 말하는 포스트 코로나 교실
편집자주
“아이들은 모두 자란다. 한 사람만 빼고.” 소설 ‘피터팬’ 첫 문장입니다. 어쩌면 한국엔 여느 세대처럼 제때 자라지 못한 ‘피터팬 세대’ 가 나올 지 모릅니다. 긴 거리두기, 비대면수업 탓에 정서·사회 발달이 더뎌진 ‘코로나 키즈’ 말입니다. 마스크와 스마트폰에 갇혀, 아이들은 ‘제대로 클 기회’를 놓쳤습니다. 방치하면 소중한 미래를 영원히 잃게 됩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그 회복에 필요한 어른들의 노력을 함께 짚어 봅니다.
코로나 이후 2년이 넘도록 교실은 절간 같았어요. '말하지마, 떨어져, 손 잡지마.' 아이들은 하지 말란 말을 가장 많이 들었죠. 그렇게 타인과 소통하고 교류할 일이 사라지다 보니, 사람과 부대끼는 일을 제일 어려워하게 됐어요.
(경기 지역 초등학교 장양선 교사)
장 교사는 지난해 2학기 초 혼돈에 빠졌던 3학년 교실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회 수업을 마무리하며 아이들을 5명씩 모아 보드게임을 시켰더니, 서로 싸우고 못하겠다며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결국 모둠활동을 평화롭게 마무리 지은 건 여섯 개 조 중에 단 한 개 조에 불과했단다.
함께 사는 기술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
가장 활기차야 했을 교실에서 '방역'이란 이름의 침묵이 강요된 사이, 아이들은 응당 배웠어야 할 사회성과 공동체 정신을 익히지 못했다. 그래서 코로나가 잦아들며 다시 활짝 문 열린 학교엔 일촉즉발 긴장감이 감돈다. 고립, 단절, 외로움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협동, 교류, 어울림이 강조되는 공동체 생활은 힘든 도전이다.
김현수 일산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가 없었더라면 지난 3년 동안 최소 600일은 등교했을 아이들이 300일만 학교에 나오면서, 더불어 사는 삶의 기술을 획득할 기회와 시간을 잃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사회화의 공백은 학원의 사교육으로도 메울 수 없는 부분"이라고 걱정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마주하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학교를 잃어버린 2년의 시간만큼, 아이들은 딱 2년씩 어려졌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초등 1학년 때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2013년생(초등 4학년)의 사회성 저하가 두드러진다는 게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다.
공동체 룰을 이해시키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3교시만 되면 책상에 엎드리거나 바닥에 눕는 아이들도 다반사"(전북 지역 초등교사)고, "급식 줄을 설 때 다른 아이보다 순서가 늦어지면 참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 일쑤"(경기 수원시 초등 교사)다. "관계 맺기가 서툴러 사소한 갈등에도 눈물을 흘리거나, 말다툼 끝에 서로 학교폭력으로 신고하는 경우"(경기 북부 지역 상담교사)도 부쩍 늘었다.
사회화에 필요한 기회 놓쳤다
학교로 돌아온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데엔 다 이유가 있어요.
(신의진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초등학교 저학년은 첫번째 사회 구조화가 이뤄지는 단계죠. 그런데 등교 공백 때문에, 생활습관과 감정을 익히고 통제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제때 단련되지 못했던 거예요." 신의진 교수의 분석이다.
심리적 결핍으로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정서·행동 위기 아동, 이른바 '금쪽이'들이 늘어나며 교실 내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한국일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공동으로 초등교사 7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학급 안에 정서·행동 위기 아동이 있다"고 응답한 교사는 656명(85.1%)에 이르렀다. 이 아이들은 주로 반항·품행 문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무기력 우울증 등을 겪고 있다.
정서 위기 아동 문제를 연구해 온 교직 24년차 최경희 수원탑동초 교사(좋은교사운동 위기학생연구회 '마음친구' 대표)는 "재난이 불러온 불안도가 높아지다 보니, 정서 기반이 취약한 아이들의 공격성이 코로나를 거치며 더 심해졌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수업 중 교실을 뛰쳐나가거나, 욕설·폭언을 내뱉거나, 친구를 때리고, 학교 기물을 파손하는 문제 행동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마음 치유할 시스템도 부재
그렇다면 코로나로 무너진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해줄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전혀요. 국가의 시스템은 있을지 모르나, 아주 심각한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작동하긴 어려운 현실이에요. 이건 국가의 아동학대라고 봐요. 아픈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으니까요."
(서울 지역 초등학교 문수정 교사)
위기학생연구회 '마음친구' 수석 연구원 문수정 교사의 답은 절망적이다. 문 교사는 정서 및 사회성 발달 문제로 위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교사들이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답답해 했다.
지금 제도로는 문제 아동이 있어도 학교나 교사가 쉽사리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한다. 현행 학교보건법상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는 한, 교사나 학교는 위기 아동을 발견하더라도 훈육·상담·치료에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 부모가 거부하는 상황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발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시라"는 호소뿐이다. 정서 위기 아동(ADHD나 우울증 등)은 특수교육 대상자도 아니라 개별화 교육을 실시할 수도 없다.
국가에서 3년마다 실시하는 학생정서 행동특성검사가 있지만, 초등학생(초1·초4)의 경우 부모가 대리 검사를 하는 형태다 보니, 위기 아동 조기 발견에 한계가 있다.
상담교사 태부족... 골든타임 지나간다
부모님들은 아이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아요. 섣부르게 생활지도에 나섰다가 아동학대로 신고 당하는 처지다 보니, 교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죠.
(경북 지역 초등학교 김정태 교사)
부모를 설득해 동의를 받아도 상담·치료까지 가시밭길이다. 우선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점검할 첫 지킴이인 상담교사부터 태부족이다. 한국일보가 교육통계분석자료집을 분석한 결과, 전국 국공립초등학교 2,615곳 중 상주하는 전문상담교사는 805명으로, 상담교사 보유 비율이 30.78%에 불과했다. 나머지 학교들은 당장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있어도 "순회상담교사가 오는 요일만 손꼽아 기다려야만 하는 현실"(장양선 교사)이다.
치료도 진입 장벽이 높다.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부족하다 보니, 예약을 잡아도 최소 3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류신혜 상담교사는 "일반 정신과에 의뢰했다가 아동이 적절한 약물적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경험이 있어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를 찾게 되더라"고 전했다.
"아픈 아이가 나쁜 아이 되지 않게"
조기 발견, 개입, 치료가 늦어질수록 금쪽이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최경희 교사는 "문제가 된 아이도 피해자지만 그 아이를 돌보느라 교사가 온 정신을 쏟는 통에 나머지 아이들이 방치되면서 교실이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호소했다.
현장 교사들의 요구사항은 단순하다. 정서·행동 위기 아동의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생활지도 법적 매뉴얼(학부모 강제 호출, 학생 분리 조치) △지원 시스템(위기학생전담팀 구성, 정서행동지원 전문교사 양성 배치 등)을 만들어 달라는 것.
마음 아픈 아이를 부모도, 교사도, 국가도 책임지지 않고 있어요.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 아픈 아이를 나쁜 아이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그때 가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건가요?
김영식 교사(좋은교사운동 전 대표)의 호소는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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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COVIDK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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