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아버지, 8년 만에 20대 딸 찾아
"사업주 대여해줘"... 빚 1억 넘게 떠넘겨
"가정폭력 아버지 협박" 세금 취소 요청에
연금공단 "내부 지침 때문에 사업주 못 바꿔"
법원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 안 돼" 딸 손 들어줘
20대 여성 A씨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버지 B씨의 폭력에 시달렸다. B씨는 코뼈 골절도 모자라 갈비뼈에 금이 갈 정도로 아내를 폭행했고, A씨의 언니에게도 손찌검을 서슴지 않았다. 어머니는 폭행을 피하기 위해 딸들과 함께 수차례 안전한 장소로 피신하다가 결국 2007년 11월 남편과 이혼했다.
부모가 갈라서면서 A씨의 삶에 평탄한 날이 찾아오는 듯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B씨가 2015년 3월 서울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이던 A씨를 찾아와 "철구조물 등을 제조하는 사업장을 열려고 하니 사업주 명의를 대여해달라"고 한 것이다. A씨는 어머니처럼 폭행을 당할까봐 두려워 B씨 요구를 들어줬다. 그러나 B씨는 2015, 2016년 부과된 부가가치세 5,600만 원과 국민연금 보험료 4,900만 원 등을 납부하지 않았고, 빚은 사업주로 등록된 A씨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졌다.
A씨는 이후 빚더미에서 벗어나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2019년 3월 과세당국에 "사업자는 아버지이고, 폭행이 두려워 명의를 대여해줬을 뿐"이라며 세금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과세당국은 2020년 2월 A씨 요구를 받아들였다. A씨는 같은 해 11월 국민연금공단에 "사업주를 아버지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연금보험료 납부 주체를 아버지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공단은 그러나 "내부 지침상 과세당국 결정 전(2020년 2월)의 사업주는 바꿀 수 없다"며 거절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①연금보험료 채무를 사라지게 하고 ②채무가 사라질 수 없다면 사업주를 아버지로 변경해달라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 신명희)는 최근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국민연금법상 사업주 변경에 따른 자격변동일은 명의대여자의 사업자 자격 상실일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며 "공단 측은 A씨의 신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한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사업주 변경은 과세 부과처분 취소날 등을 기준으로 해 소급 적용이 안 된다"는 공단의 업무 처리 기준에 대해서도 "내부 지침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다만 "연금보험료 채무까지 사라지게 하긴 어렵다"고 봤다. 공단 측에 명의상 사업주가 실제 사업주인지에 관한 실질적 심사권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공단 측 관계자는 "판결로 사업주가 바뀌기 때문에 B씨 명의로 보험료가 징수될 것으로 보인다"며 "B씨가 숨진 게 변수인데, A씨가 채무 상속을 포기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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