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학들, 정시서 징계 감점 조항 없어
학폭위 처분 기재 강화해도 당락 영향 無
"중대 학폭 정시 반영"… 정부, 여론 주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학교폭력(학폭)으로 징계를 받고도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강제전학’ 처분이 내려질 정도로 폭력 정도도 심했다. 원인은 허술한 정시모집 요강에 있었다.
정부는 학폭 징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심의 결과 기재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반영 비중이 절대적인 정시모집에선 사실상 힘을 쓰지 못한다. 학폭 가해자를 걸러내지 못하는 정시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 이유다.
2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교육부는 학폭위 심의 결과가 확정되는 즉시 내용을 학생부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에 해당하는 1호(서면사과)ㆍ2호(접근금지)ㆍ3호(교내봉사)는 이행을 전제로 1차례 기록을 면제해 주지만, 2회 이상 받으면 유보 조치까지 함께 기재된다. 심의결과에 불복해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진행해도 원래 처분 기록은 그대로 유지된다. 청구 결과에 따라 변화가 생기면 그때 수정한다.
이런 방침은 가해학생에게 경각심을 줘 폭력 행위 재발을 막겠다는 목적이 크다. 전체 대입 모집 인원의 약 70%를 차지하는 수시전형에선 학생부 기록이 중요한 만큼,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된다는 각성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학생부에 학폭 이력이 기재되는 순간 수시는 포기’라는 말은 입시 업계의 구문이 된 지 오래다.
정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아무리 심각한 학폭 사건에 연루됐더라도 수능 성적을 100% 반영하는 탓에 시험만 잘 보면 합격증을 손에 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 취재진이 서울 주요대와 지방 국립대 등 15곳의 2023학년도 정시모집 요강을 살펴보니, 서울대를 제외한 14개 대학이 수능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뽑았다.
또 대부분 대학이 학생부를 의무제출 서류 목록에 포함시켰으나, 중앙대와 경희대는 졸업예정증명서로 대체 가능했다. 아예 학생부를 낼 필요가 없는 대학도 부산대 등 4곳이나 됐다. 서울대도 ‘학내외 징계 여부를 고려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있지만, 감점 수준이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정 변호사 아들 사례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한 대학 관계자는 “정시에서 학생부는 학적 확인 차원에서 받는 것”이라며 “학폭 이력을 확인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정부도 맹점이 드러난 정시전형의 제도 보완을 요구하는 여론을 주시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내달 말까지 추가 학폭 근절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대책에는 학폭에 따른 중대 제재를 정시 등 대입 전형에 반영하는 방안이 담길 가능성이 있다. 행정소송 등 학폭 처분을 무력화하려는 가해자 측 시도를 차단하고, 피해학생 보호 조치 등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복잡한 대입 전형 특성상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규정을 손질하면 예기치 못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가령 학폭위 처분은 결과에 따라 졸업과 동시에, 또는 졸업 후 2년 안에 학생부에서 삭제되는데, 정시전형에 일괄 반영할 경우 고3과 재ㆍ삼수생 등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혼란 최소화를 위해 각 대학 사정에 맞는 입시요강 개선 작업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교육전문가인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새 정부 대책이 또 다른 법적 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부작용을 아우르는 보완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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