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호찌민 트레일
베트남 영토는 남중국해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S자 형태로 이어져 있다. 남북 최장거리는 1,650km. 동서로는 좁게는 50km에 불과한 곳도 있다. 동쪽은 바다(남중국해)고,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댄 서쪽은 안남산맥의 거친 암릉들과 우림으로 덮여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남-북 베트남 국경 비무장지대(DMZ) 전선은 약 50마일(80km)이었지만, 미군과 남베트남이 감당해야 했던 실제 전선은 동쪽 해안선과 서쪽 국경선 전부였고, 중부 고원을 비롯해 남부 내륙 거의 전역에서도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비정규군(베트콩)과 전투를 치러야 했다. 군사전문가들이 그 전쟁의 본질을 북베트남 군수보급로, 즉 ‘호찌민 루트’ 차단전쟁이라 규정하는 까닭이 그거였다.
북베트남은 통킹만 항구 하이퐁을 거점 삼아 해상을 통해 베트콩에게 무기와 병력을 보급하고, 일부는 캄보디아 남단 캄퐁솜(Kampong som)항을 통해서도 내륙 루트로 군수품을 실어 날랐다. 하지만 주요 보급로는 DMZ 인근 산악지역에서 시작해 라오스 국경을 따라 남하하는 호찌민 루트였다. 루트 중간중간 물류기지까지 건설해 남베트남 베트콩 작전지역 곳곳에 신속히 군수품을 보급했다.
급기야 미군은 1965년 3월 3일 30여 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라오스 영토의 호찌민 루트에 대한 첫 공격을 감행했다. 전시 내내 대규모 육상 공격과 고엽제 살포를 포함한 항공작전을 전개했지만, 실패했다. 다수의 작전이 전쟁 당사국이 아닌 라오스와 캄보디아 국경지대에서 이뤄졌으며, 당연히 민간인 인명피해도 이어졌다.
공산권 국가는 물론이고 서방 일부 국가까지 미국의 전쟁을 비난하고 나선 게 1965년 3월 폭격 이후부터였다. 미 의회 역시 린든 존슨 정부가 1964년 통킹만 결의안으로 의회가 승인한 전쟁을 이웃 국가로 확산시키는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미국 정부는 외교전에서 패배했고, 의회에서도 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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