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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훌리건' 된 강성 팬덤… 집단린치에 멍드는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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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훌리건' 된 강성 팬덤… 집단린치에 멍드는 민주주의

입력
2023.03.08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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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의원 악성 댓글 분석해보니
비속어 25%·협박 5.9%·신변 위협 2%
비명계 공격 표현인 '수박' 최다 언급돼
체포안 부결 후 신변 위협, 장애 혐오도
'소신정치' 실종에 팬덤·의원 자성 필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를 듣고 있다. 이날 체포동의안은 재석 297인 중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무효 20표로 가까스로 부결됐다. 고영권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를 듣고 있다. 이날 체포동의안은 재석 297인 중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무효 20표로 가까스로 부결됐다. 고영권 기자

#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표결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국회 의원회관 민주당 소속 A 의원실에는 전화벨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전날 표결 결과에 분개한 이 대표의 지지자들이 이탈표를 던졌을 법한 의원들을 색출하기 위해 돌리는 전화였다. B 보좌관은 "아침부터 전화가 계속 쏟아져서 의원실 업무가 종일 마비됐다"며 "전화를 받으면 '야, 이 XXX야'라는 비속어가 대뜸 날라온다"고 했다. 그는 "의원이 가결인지 부결인지 어떤 표를 던졌는지 집요하게 캐묻고, 알려주지 않으면 여성 비서관한테 성차별적인 비속어와 신변 위협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2. 같은 날 C 의원실도 항의 전화에 시달리다 못해 '우리 의원은 부결 표를 던졌다'는 내용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올렸다. D 선임 비서관은 "체포동의안 표결이 무기명 방식인 만큼 원칙적으로는 어떤 표를 던졌는지 말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전화 응대에 나선 비서관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의원과 상의해 글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게시글을 올린 뒤 항의전화가 줄었다면서도 "이런 상황이 안타깝고 씁쓸하다"고 했다.

비명계 악플 중 비속어 25%, 위협·협박 8%

이러한 사례는 여의도에서 강성 팬덤에 의한 집단 린치가 횡행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인 팬덤이 활발한 정치적 의사 표명에 따른 정치발전의 자양분 역할을 했던 것과 거리가 멀다. 최근 극심한 정치 양극화에 따라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를 강요하거나, 문자폭탄 등 폭력적인 방식으로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것조차 가로막는 식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의회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을 해친다는 우려와 동시에 과도한 팬덤 활동에 대한 제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27일 체포동의안 표결 직후부터 '수박(이 대표 강성 지지층이 비명계를 지칭하는 은어) 색출' 작업이 이어지던 이달 2일까지 비명계 의원 10명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표결 관련 댓글 500개를 분석했다. 인물을 특정할 수 있는 표현을 제외한 단어 5,720개를 분석한 결과, 비속어는 1,422개(24.9%)로 집계됐다. 댓글에 포함된 단어 4개 중 하나꼴로 비속어가 등장한 것이다. 비속어에는 'XX', '쓰레기' 등 직접적인 표현과 '수박', '독버섯', '기생충' 등 간접적인 표현이 포함됐다. '척결' 등의 협박성 표현은 338개(5.9%), '죽어라' '몸조심하라' 등 신변에 대한 위협을 뜻하는 표현은 104개(1.8%)였다. 외모, 나이, 신체적 특징 등으로 조롱하고 모멸감을 주는 표현은 40개(0.7%)였다.

한국일보는 7일 비이재명계 의원 10명의 페이스북 댓글 500개를 분석했다. 단일 단어 중에서는 '수박'이 134회로 가장 많이 언급됐고, '민주당(64회)', 비속어인 'XX(58회)' 등이 뒤를 이었다. 박서영 한국일보 데이터분석가

한국일보는 7일 비이재명계 의원 10명의 페이스북 댓글 500개를 분석했다. 단일 단어 중에서는 '수박'이 134회로 가장 많이 언급됐고, '민주당(64회)', 비속어인 'XX(58회)' 등이 뒤를 이었다. 박서영 한국일보 데이터분석가

단일 표현으로는 '수박'이 134회로 가장 많았다. 수박은 '겉은 파랗고(민주당 상징색) 속은 빨갛다(국민의힘 상징색)'는 의미로,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이 비명계 의원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은어다. 지난해 전당대회 당시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인신공격, 흑색선전, 계파 분열적 언어를 엄격하게 금지하겠다"며 "특히 '수박'이라는 단어를 쓰는 분들은 가만히 안 두겠다"고 엄포를 놓은 게 결국 허사가 된 셈이다. 이어 '민주당'(64회), 비속어인 'XX'(58회), '정치'(41회), '의원'(33회), '당원'(28회) '국민', '쓰레기', 비속어 'X'(이상 27회) 순이었다. "휠체어 밀어버리기 전에 진짜 입 닥치고 조용히 있어라" 등 특정 의원의 장애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악질적인 댓글도 보였다.

"의견 다르다"... 출당·징계 요구 청원 봇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자들로 구성된 민주당 수박깨기운동본부 회원들이 3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서 이 대표의 체포 동의안 부결 관련 이탈표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자들로 구성된 민주당 수박깨기운동본부 회원들이 3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서 이 대표의 체포 동의안 부결 관련 이탈표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들의 집단행동은 언어폭력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해 민주당 전대에 출마했던 E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연설 현장에 가면 '수박 XX야'라며 의원을 밀치고 때리기까지 했다"며 "그러한 폭력이 날아오는 전당대회 현장은 처음이었다"고 전했다. 지난 3일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개딸로 불리는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이 비명계 의원들을 비유하는 수박 모양의 풍선을 발로 밟아 터뜨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조직화된 수적 우위를 활용해 견해가 다른 이의 징계를 요구하며 정치적인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게시된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한 영구제명 청원은 지도부의 공식 답변 기준(5만 명)을 넘어 7만 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 전 대표가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 대표의 대장동 의혹을 제기했고,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이탈표를 추동했을 것으로 의심된다는 이유에서다.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출당 권유 및 징계 요구 청원도 7만 명대를 기록 중인데,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주장했다는 것이 청원 이유였다.

허위사실·추정에 의거한 좌표 찍기도

강성 팬덤이 잘못된 사실이나 추정에 근거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최강욱 의원이 성희롱 의혹으로 당 윤리심판원 징계 심사를 받았을 당시 잘못 알려진 사실로 일부 의원들이 곤욕을 치렀다. 최 의원의 지지자들 사이에 윤리심판위원 명단이 공유되면서 '좌표 찍기'를 통한 공격이 이뤄졌는데, 명단에 속한 8명 중 1명만 윤리심판위원이었다. 당시 신영대 의원은 페이스북에 "저는 당 윤리심판위원이 아니다"라며 "'어제 네 마누라랑 XXX 했지롱' 등 눈 뜨고 못 볼 지경의 막말 문자폭탄이 수백 통 쏟아진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때로는 팬덤이 지지하는 인물의 의사와 별개로 집단행동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 대표가 검찰에 출석했을 때 동행하지 않은 의원 명단이 돌면서 '좌표 찍기'에 따른 공격이 이뤄졌다. 이 대표가 이전부터 "혼자서 출석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던 것과 무관한 '묻지마 공격'이 이뤄진 셈이다. 민주당 지도부에 속한 한 의원은 "이 대표 발언과 상관없이 '수박'이라고 공격하는데, 동행하지 않을 방도가 있었겠느냐"며 "의원들도 다들 눈치를 보면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정치 팬덤에 설 자리 잃는 '소신정치'… "자성 필요"

전문가들은 강성 팬덤이 의원들의 '소신 정치'를 제약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의 정치 팬덤은 정치인 개인의 소신을 부정하고, 정치인이 '표를 받는 정치'를 하도록 길들이고 있다"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합의가 민주주의 작동의 전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팬덤 자체의 자성도 우선돼야 하고 의원들도 초심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정치 훌리건들이 그들과 다른 생각을 배격하면서 전체주의처럼 행동하는데 국회의원 중 누가 소신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대표는 "최근 손흥민 선수에게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한 관객에게 첼시 구단은 경기장 출입 금지 처분을 내렸다"며 "당원권 박탈 등 당 차원에서 경각심을 가지고 강력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태경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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